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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흥분벗고 내실 “차곡차곡”/통독 4주년 현지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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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흥분벗고 내실 “차곡차곡”/통독 4주년 현지리포트

입력
1994.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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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지역 자본주의 서서히 뿌리/상임국진출·유럽경제중심 깃발/고실업·저성장·상호반목등은 여전히 난제 3일로 통독 4주년을 맞는 베를린의 모습은 3주년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오는 16일 실시되는 총선의 분위기로 약간 들떠있기는 하나 거대한 공사장 같았던 구동베를린 지역은 비교적 안정된 현대도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도로공사도, 건축공사도 많이 줄어들고 현대식 아파트들이 아직 즐비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우중충한 낡은 건물들 사이로 제법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장벽뒤편에 위치해 동베를린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던 구동독 주재 북한대사관의 넓은 건물 일부는 번듯한 여성전용 헬스클럽으로 변했다. 이익대표부로 간판을 바꿔 단 대신 건물을 임대해 통독 특수에 따른 외화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의 「축제」가 끝난지 4년. 적어도 외양으로 볼 때 독일은 도시의 모습이나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나 자본주의란 음식을 소화해 가는데 익숙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갑작스런 통일이 준 경제 사회 정치등 제반문제를 해결하기에는 4년이란 시간은 아직 짧다고만 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베시(WESI·서독인)와 오시(OSSI·동독인)의 구별은 독일사회에 남아있다. 더 심화됐다고는 할 수 없으나 통일비용이 계속 독일경제의 회생을 더디게 하고 생활수준과 임금, 직장과 직급의 차이가 존재하는 한 그 앙금은 쉽게 풀리지 못할 것 같다.

 구동독인들은 경제가 4년전의 약속처럼 빨리 회복되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가장 크다. 구동독지역에 대한 투자는 물론 크게 늘고 있으나 구동독인은 여전히 서쪽보다 두배가 넘는 실업률에 허덕이고 있다.

 연방정부는 연간 1천3백억마르크의 재정을 쏟아부었으나 수십년간 사회주의 체제의 비효율성에 젖어온 구동독 경제를 짧은 기간에 재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93년 사회연대협정에 따라 세금을 인상하고 임금을 억제하며 사회보장을 축소, 여기서 나오는 재원으로 10년간 해마다 1천1백억마르크를 투입키로 한 독일의 고통분담작전은 아직 뚜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구동독인들은 동독에 대한 서독의 투자가 결국 서독인의 주머니만 부르게 하고 경쟁체제에 약한 그들을 정들었던 직장에서 쫓겨나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체제변화에 적응속도가 떨어지는 중장년 이상의 구동독인들은 직장에서 실직하고 상대적 박탈감은 구체제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같은 동독내의 분위기는 최근의 구동독지역 선거에서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이 20%가량의 지지율을 획득한데서 잘 나타난다. 

 이같은 불만은 게르만 민족주의 성향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가장 큰 사회적 문제인 극우파의 외국인에 대한 테러로 나타나고 있다. 터키인 일가족 5명을 불타 숨지게 한 지난해 5월의 졸링겐 사건이후 외국인 숙소에 대한 방화사건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도 함부르크 인근 헤르포르트에서 유고난민 2명이 방화로 숨졌다.

 그러나 이같은 통일의 부작용은 사실 새로운 것도, 예상치 못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더 심각해진 것도 아니다. 통일 4년에 접어든 독일은 이제 구동독지역의 경제부흥과 동독인의 체제적응 지원에 쏟았던 국가적 관심을 서독으로 옮겨가고 있다. 통일의 주체인 서독이 변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마스터플랜이 속속 발표되었다. 이는 쉽게 말하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시절처럼 인식을 전환시키자는 것이며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것이다. 콜총리는 연초 시정연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현실주의, 창의와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의 경쟁력 약화는 통일비용 때문이 아니며 근본적 개혁에 둔감한 독일의 경제사회구조에 대한 지나친 환상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통일이후에 대한 기대가 감상적으로만 너무나 컸으며 정치세력들이 이를 부추겼다는 자성도 지식인들 사이에 지적되고 있다. 흥분과 기대, 실망이 이제 차분함과 현실감각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통일의 후유증이 사회적 측면에서 여전히 완전 해소되고 있지 못한데 반해 통일독일의 국제적 위상은 지난 4년간 크게 신장됐다. 클라우스 킨켈 외무장관은 이번 49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독일은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전적으로 참여할 용의가 있다』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확대를 요구했다. 콜총리는 통독 4년을 맞아 르몽드지등 유럽의 유력지들과 가진 회견에서 『독일이 금세기의 전반에는 군대만, 후반에는 마르크화만 생각하는게 아니냐』는 기자의 지적을 일축했다. 그는 『경제이상으로 독일에 떠맡겨진 국제사회의 책임을 외면한다면 독일의 존재가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독일군의 해외파병 지역제한을 사실상 철폐하는 판결을 내렸다. 유엔의 요청이 있으면 유럽연합(EU)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느 분쟁지역에도 군대를 보낼 수 있다는 결정이다. 이로부터 한달후 이른바 4대 점령국은 베를린에서 깃발을 내렸다. 독일은 이로써 패전의 멍에를 벗었다. 유럽통합의 상징인 유럽중앙은행은 지난해 유럽통화기구(EMI)를 유치하는데 성공한 프랑크푸르트에 세워질 게 확실하다.

 최근 대중국 경제협력관계 강화등 아시아에 대한 발빠른 외교와 동구권의 입장대변자로서 동구와 구소련 공화국들을 포용하고 있는 독일은 이제 더이상 「경제대국, 외교소국」 이기를 자신있게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도 어려운 가운데서 올해부터 호전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상반기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8%를 기록, 통일후 지난해까지 이어온 침체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성장이 마이너스 3%였음을 볼 때 독일 경제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개선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4년간은 통독의 부정적 측면이 주로 부각돼온 기간임에 틀림없다.그러나 통일 4주년을 맞는 독일은 갑작스런 통일이 불가피하게 초래한 사회·경제적 혼란과 어려움을 서서히 극복해가는 가운데 통일의 과실을 따기 위한 자신감이 총체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다.【베를린=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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