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폭력물 폐해 “위험수위”/“많이 죽여야 영웅” 동기없는 살인 보편화/성인전용관 설치·수입봉쇄론 대두 할리우드 폭력물의 폐해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할리우드가 머리를 짜내 만든 폭력·에로물들은 마치 『이래도 안 볼테냐』고 관객들을 종주먹질하는 듯하다.
사람을 죽여도 어떻게 죽여야 더 자극적일 수 있으며 어떻게 벗기면 관객이 더 들겠냐가 중요할 뿐 이같은 영화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해악을 미칠지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전기톱으로 손발을 절단하는 정도는 이제 아무 것도 아니다. 총을 쏴도 살점이 튀어야 직성이 풀린다. 「작품성」이라는 방패막이 때문에 오히려 미화된 감이 있긴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리스트」에도 총알에 뚫린 사람의 머리에서 뇌수가 터져나오는 장면이 있다.
홍콩느와르의 시조인 오우삼감독이 할리우드에 스카우트돼 만든 「하드타깃」은 시종 살인으로 점철된 살인기계가 주인공이다. 중국인민 수억명이 보았다는 「람보」나 「로보캅」등도 배경만 다를 뿐 초능력 살인기계를 등장시켜 자극적인 살상술을 보여주고 폭력의 주인공을 영웅화하는 영화들이다.
무력한 여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파렴치한 범죄 역시 수입 영상물에서 이미 보편화된 목록이다. UIP직배영화인 「긴급명령」에서는 쿠바의 정보요원이 자신이 유혹한 여성을 실컷 이용한 후 쓰임새가 다했다고 판단되자 목을 꺾어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현재 시내극장에서 상영중인 「펄프픽션」에는 자동차를 타고 가던 갱의 일원이 실수로 동승한 사람의 얼굴을 쏘고 이때 자동차시트와 얼굴에 튄 살점과 피, 뇌의 파편등을 전문가를 고용해 씻어낸 뒤 킥킥대는 장면이 있다. 전편이 유혈낭자한 이 영화에서는 수많은 살인이 행해지는데 살인의 동기가 약할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살인과정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다.
최근 터진 엽기적인 살인사건들의 공통점은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살인에 절박한 동기가 없다는 점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거나 원한 때문이라는 최소한의 변명도 없다. 온보현의 『살인에서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었다』는 말처럼 어처구니없고 비상식적이다. 문제는 이들의 무동기·반인륜적 살인행각이 이미 할리우드 폭력물에서는 보편화된 지 오래라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할리우드 영상물을 통해 미국수준으로 병들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는 최근에야 비로소 폭력영상물의 폐해가 위험수위에 왔음을 자각하고 대책을 발표하는등 법석을 떨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폭력영상물·만화 근절 종합대책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사회저변에는 위기의식이 퍼져 있었다.
김동호 공연윤리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폭력물의 심의를 강화하고 심의방식을 등급제로 세분화, 청소년을 유해영상물로부터 차단하며 등급외 성인물을 수용하는 성인전용관 설치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선진국의 공해상품인 유해영상물들을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수입통관 과정에서부터 원천봉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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