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부친 노하우 아들이 계승 결실/전공기계공학 대잇기 “스승과 제자였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시에 있는 AVL사는 기술이 우수하기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 엔진 및 엔진측정기기 생산회사이다. 내로라하는 세계유수의 자동차회사들도 신제품을 개발할 때는 엔진에 관해 AVL에 한번쯤은 자문을 구하고 있다.
이 회사종업원들은 누구나『세계를 누비는 자동차의 대부분은 우리가 개발한 엔진기술을 이용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AVL이 오늘과 같은 명성을 쌓기까지는 창업자인 한스 리스트씨(98)와 현회장인 헬무트 리스트씨(54)의 2대에 걸친 노력과 상호신뢰가 뒷받침됐다.
헬무트씨는 60년대후반부터 아버지 한스 리스트씨(98)의 뜻을 좇아 AVL의 경영에 참여했다. 그라츠 공대에서 부친이 전공한 기계공학을 전공, 졸업한 직후이다. 부친과 같은 공부를 한 것도 부친의 뜻에 따른 것이다. 4년간의 견습을 거쳐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던 헬무트씨가 역점을 둔 사업은 당시로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엔진시험설비부문이었다.
엔진개발기술자체는 이미 그 당시에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었으나 보다 신속히 효율적인 엔진을 개발, 경쟁업체들의 추격을 완전히 따돌리기 위해서는 엔진시험설비개발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또 엔진시험설비를 개발하면 AVL자체의 신기술개발이 용이할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엔진측정기기를 제조, 해외시장에 내다팔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엔진의 기술이 발달, 엔진의 모든 기능을 검사하고 조절할수 있는 엔진측정기기의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는 헬무트씨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아 AVL은 지금 세계적 엔진개발 및 엔진측정기기제조회사로 자리잡았다.
헬무트씨는 AVL의 성공에 대해 선대에서 20여년에 걸쳐 이뤄놓은 엔진개발노하우가 밑거름이됐다고 주저없이 말하고 있다. 아버지 한스 리스트씨가 AVL을 엔진개발에 있어 명문업체로 키워놓지 않았더라면 엔진측정기기의 성공이 있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한스씨는 대학을 졸업한후 중국등지에서 공학교수로 지내다가 기차와 자동차가 말과 마차를 몰아내면서 이제 막 새로운 교통수송수단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자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AVL을 설립했으며 회사가 기반을 잡자 헬무트씨에게 자신과 같은 전공을 공부시켜 뒤를 잇게했다.
『아버지이지만 또한 저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내연기관의 제1세대 전문가라 할수 있는 아버지를 창업자로 둔 것은 AVL의 행운입니다. AVL이 엔진전문기업으로 성공할수 있었던 데에는 아버지의 수십년에 걸친 연구성과가 밑거름이 됐음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백수를 바라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매일 두차례씩 회사에 나와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는 한스씨의 열성은 헬무트씨에게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힘이다.【그라츠(오스트리아)=황유석기자】
◎독 「레트만」/가업전통 이어온 「유럽의 가족기업들」/청소업서 「환경 대기업」 우뚝/3대물림쓰레기수거서 재활용까지 완벽
독일 젤름시의 레트만그룹은 독일의 환경산업분야 10대 기업중 하나이다. 계열기업 6개에 종업원4천여명인 이 그룹은 쓰레기수거에서 자원재활용에 이르기까지 환경산업 전반에 참여하고 있다. 연간 매출액은 5천여억원(10억 마르크).
이 그룹의 노베르트 레트만회장(55)은 60년대초만해도 몇대째 가업으로 내려온 청소업을 이어받아 낡은 트럭 1대로 동네 쓰레기를 실어 나르던 젊은이였다. 다만 어려서부터 보고 익혀온 청소업에 대해 나름대로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던 점이 다른 청소원들과 다른 점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에게 마차 1대를,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낡은 트럭 1대를 물려주었지만 그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값진 유산은 청소업을 천직으로 삼아 최선을 다하는 소명의식이었다.
번영과 생산, 그리고 소비의 시대였던 60년대 레트만회장은 폭증하는 쓰레기를 치우며 고향 젤름에서 착실하게 사업을 키워 나갔다. 72년에 제정된 환경법은 그에게 황금의 기회였다. 당시부터 독일에선 환경보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쓰레기처리와 자원재활용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레트만회장은 주저없이 새로운 유망산업으로 떠오른 자원재활용 분야로 진출했다.
자원재활용을 뜻하는「리사이클링」이란 말이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용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80년대 중반「레트만」은 이미 동네 청소용역회사가 아닌 대기업으로 자라나 있었다. 종이·유리병등 각종 폐품의 재활용은 물론이고 수은등 특수 위험물질의 분리 및 처리등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까지 맡아 하는 환경전문기업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후 레트만그룹은 해외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오스트리아 호주 미국에 쓰레기처리 및 자원재활용공장을 세웠으며 동구에도 진출했다.
레트만그룹은 레트만가의 소유이다. 레트만회장이 60%, 4명의 아들이 각각 10%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대학재학중인 막내를 제외한 3명의 아들들은 현재 레트만그룹의 중견간부로 일하며 대물림을 위한 수업을 받고 있다.
레트만그룹의 눈부신 성장은 환경보호라는 시대의 조류에 힘입은 바 크지만 청소업을 몇대째 가업으로 이어 온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찾아 온 기회를 결코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젤름(독일)=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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