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모임에 참석했던 동창 몇명과 영화구경을 갔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오후 5시, 주부들은 빨리 집에 가서 저녁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영화 끝나는 시간이 너무 늦다고 걱정하던 친구들은 귀가를 서둘렀다. 차를 타려고 함께 걷다가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시간에 밖에 있으면 나는 불안하고 초조해. 빨리 집에 가서 저녁준비를 해야 할텐데 하고 쫓기는 기분이야. 한평생 이렇게 쫓기고 있으니 무슨 이런 병이 있니』
『그래서 뭐 억울하니? 주부가 일찍 일찍 집에 들어가면 납치당할 염려 없고, 맛있는 음식 만들어 식구들 먹일 수 있고 나쁠 게 없잖아?』
『맛있는 음식 만들면 누가 먹어? 남편도 아이들도 밤 12시나 돼야 들어 오고, 나혼자 TV 보며 기다리는게 일이야. 그런데도 왜 저녁에 어둑어둑해지면 집에 가야지 하고 조바심이 날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두 외국에 나가 있는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며칠전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했는데, 나 혼자 먹자고 밥을 짓기가 싫었어. 점심은 빵으로 때웠고, 저녁에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지. 어디로 갈까 동네를 다니다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집으로 들어 갔어. 닭고기 두조각과 샐러드로 저녁을 때우며 생각했지. 아이들도 각기 다른 도시에서 이렇게 쓸쓸한 저녁을 먹고 있겠구나,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인가, 늙으면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모르니 지금부터 혼자 밥먹는 훈련을 해야 하는건가, 이런 생각을 했어』
어두워지고 있는 가을 저녁, 그들은 외롭게 보였다. 우리의 생도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는걸까. 학교동산에서 쉴새없이 재잘대던 어린 시절, 사랑이 어떻고 결혼이 어떻고 하며 이 거리 저 거리를 쏘다니던 젊은 날, 그날의 그 친구들이 바로 저 쓸쓸하게 보이는 여자들인가.
우리는 더 외롭게 혼자가 되어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즐겁게 식탁을 차리고, 야심에 찬 계획을 세우고, 세상 일과 이웃에 마음을 열고,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우리의 생이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다는 망상을 떨치고, 우리 앞에 펼쳐진 이십년 삼십년을 무엇으로 채워갈지 설계를 해야 한다…라고 나는 거듭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워질 무렵 주부들이 거리에서 느끼는 귀가 강박증,초조하게 달려간 집에서 밤늦도록 홀로 가족을 기다리는 나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친구들이 자신의 귀가 강박증을 허무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남편과 아이들은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집에서 외로워하는 한 여성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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