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확인하고도 12일후 수배/공조수사 기피·제보에만의존 살인조직 지존파사건과 택시살인마 온보현(37) 사건해결의 수훈 갑은 경찰이 아니라 제보자 이양(27)과 폐쇄회로 TV다.
특히 온보현사건에서는 경찰의 초동수사 소홀과 공조수사 미흡으로 막을 수 있었던 희생자를 방치한 꼴이었다.
신속한 공조체제 구축으로 효과적인 수사를 해도 범인의 기동력과 대담성을 따를 수 없는 상황이었는 데 「한건주의」와 안일한 수사태도로 쉬쉬하며 혼자 해결하려다 범인검거 기회를 놓쳐버렸다.
두 사건에서는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지적돼온 이같은 악습이 극명하게 드러나 『경찰을 믿어도 되나』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차량을 이용한 「치고 빠지기」식 범죄가 날로 기승을 부리는 데도 경찰청은 올 봄 직제개편에서 공조수사를 담당하던 수사지도관실을 해체, 범죄흐름에 역행했다.
택시살인마사건이 처음 경찰에 인지된 것은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한 뒤 야산 나무에 묶여 있다 탈출, 김제경찰서와 서울 송파경찰서에 신고한 지난 1일이었다. 구덩이까지 파놓는 수법으로 보아 범인의 잔혹성과 추가범행 가능성은 누구라도 짐작할 만 했다. 이틀 뒤인 3일 고작 4명으로 전담수사팀을 구성한 김제경찰서는 서울로 형사를 보내 범인 온의 신원을 확인했다. 9일과 11일 온의 추가범행사실이 드러나자 15일에야 지명수배를 내렸다. 김제서는 당연히 서울 경찰관서와 공조수사를 펴야 했는데도 혼자 사건을 해결하려는 한건주의 타성인지, 안일한 수사관행 때문인지 온이 추석명절에 고향에 내려올 것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송파서도 이런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허양 납치사건을 접수한 용산경찰서도 허양이 가출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가족들의 말을 믿지 않고 가출로 치부해 온이 연속적인 범행을 저지른 13일과 14일 이틀간을 허비하고 15일에야 허양의 현금카드로 납치사건임을 인지해 허겁지겁 수사에 나섰다.
허양사건이 온의 범행으로 밝혀진 22일 이후에도 1, 2차 범행의 피해자 진술조차 받아두지 않았다. 이미 김제서가 온을 전국에 지명수배했는데도 은행 폐쇄회로 TV에 잡힌 온이 허양사건과 앞의 두 사건의 범인임을 밝혀내는데 10일이나 걸렸다. 3개 경찰서의 수사과정에는 「공조수사」라는 단어가 없었던 것이다.
온이 훔친 택시의 번호판을 변조해 6차례 범행을 하면서 피해자들을 태우고 전국을 누비다시피 하는 과정에서 단 한차례 검문도 받지 않은 사실은 공조수사 부재와 겉치레 검문검색의 관행을 잘 말해준다.
『아직까지도 나의 범죄를 모르는가, 김제서 바보같이…』 『절대로 나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자수하기 전에는』 범인의 범행일지는 「기는 경찰 나는 범죄」라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정덕상·김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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