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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정의 거리(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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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정의 거리(사설)

입력
1994.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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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사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비정한 사회가 됐는지 모르겠다. 잇단 강력사건으로 흉흉한 세태속에서 엊그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영일시장앞 횡단보도에서 있었던 또 하나의 사건은 다른 각도에서 이 사회의 비정함, 더 정확히 표현하면 돈에 눈이 먼 각박한 도시인들의 메말라버린 심성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인 것이어서 통탄을 금하기가 어렵다.

 비록 새벽길이었다고는 하지만 횡단보도에서 택시가 30대여인을 치어 차에 매달고 30여나 끌고 달아나는데, 20여명이나 있었다는 행인들이 소리치거나 쫓아가 치인 사람을 구할 생각도 안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그래도 낫겠다. 20여명의 행인들은 사고 택시에 치여 끌려가는 여인의 허리에 찼던 전대가 터지면서 쏟아져 나온 1만원권 지폐등 2백30여만원을 주워 갖고 달아나기에 바빠 누구하나도 사고택시의 번호판마저 보고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가 어찌 이렇게 비정하고 각박할 수 있다는 것인가. 범죄꾼의 범행못지 않게 끔찍하기만 하다.

 전통사회가 무너져 내리고 많은 사람들이 밀집돼 사는 도시생활이 사람들로 하여금 남이나 이웃에 관심을 갖지않고 저마다 개체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속성이 두드러지게 마련이긴 하지만, 우리사회는 공동생활의 지혜가 너무 부족한게 틀림없다.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불량배들이 부녀자를 희롱해도 누구하나 야단치거나 말리지 않고 못본 체하기 일쑤다. 거리에서 청소년이 뭇매를 맞거나 소매치기등 범인들이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나도 잡을 엄두도 못내는 모두가 비겁한 사람들뿐인 세태가 돼버렸다.

 아무리 새벽길 횡단보도에서 1만원짜리 지폐가 휘날린다 하더라도 누구 하나쯤은 그돈이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 것인가는 둘러 봤어야 했다. 택시가 사람을 끌고 달아나는 것을 목격했다면 돈 줍기에 정신이 나간 행인들을 일깨워 택시를 뒤쫓고 경찰에 신고도 했어야 했다. 결국 그 여인은 끝내 숨지고 택시는 도망쳤다.

 그러한 시민정신과 공동생활을 하는 지혜가 싹 말라버렸으니 범죄꾼들이 거리에서 무차별로 부녀자를 납치·살해하는 범죄 무방비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범죄가 발생하면 치안을 책임진 경찰이 우선은 범인을 잡아야 하고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예방치안능력까지 발휘해야 하는 것은 의무이지만 복잡다기한 거대도시 속에서는 경찰의 힘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 스스로도 공동체의 삶을 지혜롭게 영위하기 위해 고발과 신고정신을 발휘하고 이웃이 당한 불행에 훈훈한 인정을 나누는 정겨운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남의 불행이 곧 나의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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