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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 심의의 방향/박명진(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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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 심의의 방향/박명진(한국논단)

입력
1994.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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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들의 충격적인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꼭 단골로 지탄받는 대상이 있으니 그것은 폭력적인 내용이나 과도한 성애묘사를 담고 있는 선정적인 영화나 비디오 영상물들이다. 그것들이 범죄를 촉발시킨 원인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 주변에 쏟아지는 무수한 영상물들을 관찰해 보면 그런 비난이 당연하다 싶을 만큼 유해물질로 가득 찬 느낌이 드는 영상 쓰레기더미가 지천이다. 다매체시대에 접어들면서 영상물의 양은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매년 제작되는 한국영화는 70∼80여편 정도요, 84년까지는 엄격한 수입쿼터제가 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영화도 연간 20편에서 30편 미만에 지나지 않았다. TV도 현재보다 한 채널이 적었으며 비디오는 보급되지도 않았었고 가정용 전자오락기도 없었다. 그러므로 영상물로는 TV를 제외하면 외화 방화 포함하여 1백여편 남짓한 영화와 전자오락실의 전자게임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로부터 10년후 상황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실적자료를 토대로 해서 보면 93년의 경우 심의를 신청한 한국영화가 65편에 외국영화는 총 3백48편, 비디오의 경우는 외화가 1천9백37편, 국내물이 7백56편이었다. 10년전에 비해 극장영화 편수는 4배로 늘었고 대다수가 장편 극영화인 비디오라는 새로운 형태의 영상물 2천7백여편이 등장했다. 일부 극장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된 것을 감안해도 93년들어 1년사이 우리 주변에 새로이 깔린 총 영화편수는 TV를 제외해도 3천여편에 달하므로 10년 전에 비해 무려 30배가 늘어난 숫자이다. 가정용 전자오락게임의 경우는 심의 자체가 94년부터 시작된 탓으로 보급된 편수가 통계에 잡혀 있지 않지만 94년 6월 한달동안에 심의를 거친 것만해도 2백2편에 달한다.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추측해 볼 때 93년에 출시된 것이 2천여 종류는 족히 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10년사이에 이렇게 눈이 휙휙 돌아갈 만큼의 변화를 겪은 분야가 또 있을 것인가? 그런데 내년부터 가동되는 CATV, 지역 민영방송, 조만간 시작될 위성방송을 포함하면 방송분야에서만 향후 5∼6년 사이에 현재의 10배가 넘는 영상물의 보급이 예상된다.

 이렇게 폭발적인 증가추세에 있는 영상물의 심의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우선 심의주체의 문제이다. 동일한 영상물이 극장, 방송, 비디오, 시디 롬(CD ROM), CATV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중복 보급되는데 그 심의주체도 여기저기 분산되어 심의결과에 일관성이 있기 힘들다. 이제 전화선을 이용한 비디오영화 서비스인 VOD(주문형 비디오)까지 시작되면 자칫 심의주체는 공륜, 방송위원회, 유선방송위원회에 이어 체신부에 이르기까지 넷이 될 판이다. 현재 지상파방송을 제외하고는 모두 관람연령의 등급심의를 하고 있는데 매체에 따라 같은 영화가 서로 다른 등급을 받을 개연성도 얼마든지 있다. 현재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진 방송유관위원회의 통합이 이루어지면 방송관련 매체 내의 통일성은 이루게 되겠지만, 극장·비디오용과 통신·방송용이라는 이원성은 여전하게 된다. 인력, 시간낭비를 야기할 뿐더러 심의결과에도 일관성이 없게 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매체에 따라 개방의 정도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등급에서는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적인 것은 모든 영화를 그것이 상영될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단일기구에서 심의하여 등급을 매겨주고 배급 채널들이 각기 이 기준을 존중하면서 편성에 반영하되 매체의 성격에 따라 자체 심의를 거쳐 필요하면 부분삭제를 하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영국등 몇 나라에서 따르고 있는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엄청난 물량을 생산적으로 걸러내기 위해 심의의 방향과 목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전반적으로 다원주의적 가치가 폭넓게 받아들여지면서 예전에 중시했던 정치적 주제에 대한 심의나 성인물에 대한 규제는 비교적 관대해지고 있는 추세이나 유해한 문화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엄존한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영화나 비디오물등의 영상물이 심의를 받아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심의를 거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간에 무조건 청소년불가의 것이 되므로 대부분 심의를 거치게 마련이다. 자율심의에 맡겨져 있어 무한히 자유로운 것같은 미국도 청소년 보호에 관한한 온갖 사회단체와 지방자치단체의 감시와 통제가 준엄하다.

 우리에게 적절한 심의방향 역시 청소년보호에 우선 순위가 주어져야 하겠으나 보호의 기준이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특히 시장개방 이후 쏟아져 들어오는 저질의 수입 영상물에 대한 제동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외화를 주고 수입해 오는 수입물량이 엄청날 때는 수입쓰레기같은 공해물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수입추천의 기준이 단순히 과도한 폭력이나 지나친 성애묘사같은 금기사항을 걸러내는데 머무르기보다 어느 정도의 질적 수준에 대한 평가가 개입된 보다 적극적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서울대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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