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압구정동의 피해의식(장명수칼럼:1726)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압구정동의 피해의식(장명수칼럼:1726)

입력
1994.09.28 00:00
0 0

 「지존파」 사건이 「야타족」과 「오렌지족」에 대한 새삼스런 규탄으로 번지고, 현대백화점의 고액구매자 명단이 범인들에게 넘겨졌다는 끔찍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압구정동 주민들 사이에는 피해의식이 번지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압구정동에 사는 주부들로부터 이런 불평을 들었다. 『야타족이나 오렌지족들은 압구정동에 와서 놀 뿐 그들이 모두 이 동네에 사는 것은 아니예요. 압구정동이 무슨 특별한 동네인가요. 작은 평수와 큰 평수의 아파트들이 섞여 있는 아파트촌이고, 20평·30평대 아파트도 많은데, 마치 흥청망청하는 부자들만 사는 것처럼 오해를 받고 있으니 억울하고, 불안해요』

 『택시강도들이 압구정동 주부들을 표적으로 삼는다는 소문 때문에 택시를 탈 때마다 겁이 나요. 압구정동에서 택시를 잡을 때는 물론 다른 곳에서 탄 후 압구정동으로 가자고 말할 때도 공연히 운전기사를 살펴보게 돼요. 현대백화점 고객명단이 범인들에게 넘겨졌다니 더 소름이 끼쳐요』

 『나는 이 동네에서 20여년 살아 왔는데, 주변에서 과소비하는 주부들을 못봤어요. 극히 일부에서 사치를 하고, 그런 집 아이들이 오렌지족 소리를 듣는 것 같은데, 신문·방송에서 요란하게 보도하다 보니 마치 이 지역 주민과 아이들이 모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돼버렸어요. 우리 아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비싼 운동화 한번 안 사주고 검소하게 키웠는데, 압구정동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오렌지족이라는 오해를 받고, 범죄의 표적이 되면 어떡하나 불안할 때가 많아요』

 그들의 말은 옳다. 압구정동 지역에 과소비 계층이 비교적 많이 살고 있고, 오렌지족과 야타족이 많이 몰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 주민들이 도매금으로 비난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비난 정도가 아니라 범죄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을 정도라면 그들이 억울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가 아직 부자를 존경하는 분위기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부자들은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었고, 많은 세금을 내어 국가살림에 큰 몫을 하고 있으니 부자답게 소비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도 아직 폭 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또 부자들과 그들의 자녀중에는 분별없는 생활태도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스스로 범죄의 표적이 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존파」 사건에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돈 있다고 으스대는 놈들, 야타족과 오렌지족을 죽이지 못하고 잡힌 것이 한이다』라는 범인들의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부자들의 몰지각한 행태가 그런 끔직한 범죄의 원인인 것처럼 몰고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득격차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고, 현재 불우한 처지에 있다 해도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는 점에서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지존파 충격이 엉뚱한 공격물을 향해 터지고 있는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