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체제선전의 「입」… 탈냉전시대엔 입지한계/뉴스·교양위주로 “새활로”… 꾸준한 청취율 냉전시대 동서진영의 체제를 선전하는 「입」이었던 단파방송들이 탈냉전으로 설 자리를 잃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있다. 체제홍보나 상대진영의 비난을 일삼았던 내용에서 정확한 정보의 신속한 전달은 물론이고 각나라 고유의 문화소개, 독특한 프로그램편성등으로 내용을 바꾸고 있지만 오랜기간 익어온 체질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다.
『제국주의자들의 아첨꾼인 수정주의자 티토일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진정한 가르침을 배반하려 들고있다』며 구유고의 전향을 신랄히 비난해 한때 명성을 날렸던 알바니아 라디오방송 「라디오 티라나」를 비롯, 「라디오 프라하」등 구동구공산권의 단파방송들은 대폭 축소됐거나 일부는 이미 사라졌다.
「모스크바의 밤」프로로 유명했던 「라디오 모스크바」의 기세도 크게 꺾였다. 한창때는 82개국 언어로 송출했으나 지금은 42개국어로 줄어들었다.
구공산권만 아니라 서방의 단파방송도 제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유럽내 대표적인 미단파방송들인 「라디오 프리 유럽」 「라디오 리버티」등도 방송시간을 크게 줄이고 지난 40여년간의 주역할인 대공산권 선전방송을 중지했다. 대신 동유럽내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과 민주제도의 정착을 위한 교양방송으로 바꾸었다. 「미국의 소리」(VOA)방송도 탈냉전과 예산축소등으로 존폐위기에 직면해 뉴스보도, 심층 뉴스분석등으로 활로를 찾고있다.
통상 표준방송으로 불리는 AM라디오가 중파를, FM라디오가 초단파를 쓰는데 비해 단파방송은 단파(3―30㎒)를 사용한다. 단파방송은 특성상 수천 떨어진 곳에서도 청취할 수 있어 일찍부터 간첩들이나 해외방송에 이용돼왔다.
단파방송이 처음 등장한 것은 27년 네덜란드에서다. 네덜란드는 조국의 소식을 동인도식민지에 전달하기 위해 이를 개발했다. 곧이어 뛰어든 소련은 50개언어로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독일 프랑스 영국등도 이에 가세했으며 34년엔 일본도 동참했다.
단파방송을 이념선전의 수단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무솔리니다. 그는 34년 영국의 아랍통치에 반대하는 선동방송을 아랍어로 전개했고 이에 영국이 대항방송을 개시했으며 나치독일도 이같은 중동의 라디오 선전전에 뛰어들었다.
냉전기간 내내 단파방송이 극성을 부렸지만 아직도 1백60개국에 1천6백개의 방송국이 남아 있다. 이중 영국BBC는 세계각지에 있는 계열방송사를 통해 주당 1천4백시간의 가장 많은 단파방송을 하고 있고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라디오 보츠와나」는 1백여시간으로 가장 적은 시간을 내보낸다. 「라디오 보츠와나」는 영어와 보츠와나어로 소, 닭의 울음소리등 온갖 자연의 소리들을 내보내 인기가 있다. 캐나다의 「라디오 캐나다 인터내셔널」은 국내신문의 내용을 세계곳곳에 파견돼있는 자국의 평화유지군이나 해외동포들에게 들려준다.
정규적인 단파방송에 식상한 청취자들은 무허가 해적방송으로 채널을 돌린다. 미국 북동부지역에 많이 있는 이 방송들은 주로 대중음악을 들려준다.
최근 BBC방송의 청취율 조사에 의하면 전세계에서 매일 2억명이 단파방송을 듣고 있으며 6억명정도가 단파라디오를 갖고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중 절반가량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다. 청취율도 꾸준한 증가세여서 걸프전이나 쿠바난민사태등 국제적으로 굵직한 사건이 발생하면 청취율도 급증한다.
방송전문가들은 단파방송의 감소추세에도 불구하고 『현대가 비디오시대이지만 단파방송은 적어도 향후 수십년간은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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