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동료조각가가 우연한 기회에 술 자리에서 「오로지 작품만으로 승부를 건다」는 근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한 선배 조각가와 만난 이야기를 하였다. 그 선배는 평소 말수가 적지만 한번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진지한 면을 지니고 있다. 동료조각가에 의하면 그 날의 화젯거리는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작품을 하고는 있지만 죽은 후 그 작품들을 어디다 보관해야 할는지 걱정입니다.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혼신을 다해 작품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어』 『그럼 누가 해줍니까』 『살아있는 지금도 작품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죽은 후까지 어떻게 생각하나. 죽으면 그 뿐이지 뭐』
실은 정말 그렇다. 역사상 죽은 다음을 의식하여 살아서 무언가 성취해놓으려는 과욕의 실례로 멀리는 진시황을 들 수 있고 가까이는 김일성을 들 수 있겠지만, 그와 같은 불가사의한 일은 당대 신격화된 권력을 가진 자만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영광도 당분간 지속될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세월이 흐르고 나면 모두가 헛된 일이라는 것이 또 역사를 통하여 입증되고 있다. 하물며 권력이나 재력과는 거리가 먼 예술가가 생애에 어떤 상징적인 발자취를 남기려고 한다면 그만큼 힘에 겨웁고 귀한 창작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인간이 사후 남기는 것은 가장 자기답게 살다간 흔적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생의 보람은 생전 사람들로부터 듣기 좋은 평판이 아니고 사후에까지 포함해서 머나먼 훗날 『그는 가장 진솔한 생애를 보냈다』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시대를 가장 자기다운 긍지를 갖고 살다간 사람들의 전기를 읽으면 크나큰 감동을 준다.
선배조각가는 대학교수도 아니고 큰 상을 탄 적도 없지만 한 예술가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을 뿐이며 그가 무심히 뱉은 『죽으면 그 뿐』이란 말은 보통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일 따름이다.<고정수 조각가>고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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