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지위따른 멸시·차별 없어야 서울의 한 중학교. 고급아파트와 서민아파트의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이 학교에서는 최근 폭력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조용했던 학교가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위한 서민아파트가 인근에 완공되면서부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있는 집」학생들이 전학온 「없는 집」학생들을 따돌리고 텃세를 부리기 때문이었다. 전학온 학생들중 일부는 의기소침한채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일부는 무리를 지어 다니며 폭력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아이들끼리의 일이지만 서민아파트에 사는 학부모들은 어른들이 평소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성남에 살고 있는 김모씨(46·여)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파출부일을 두달만에 그만두었다. 택시운전사인 남편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입원하는 바람에 생계가 막막해진 김씨는 서울의 고급아파트에 일자리를 얻었을 때만 해도 들뜬 기분이었다. 지하철 분당선의 개통으로 출·퇴근이 편했던 김씨는 남편이 퇴원하더라도 함께 벌어 내집마련을 앞당기기로 했다.
그런 김씨가 일을 그만둔 것은 모멸감 때문이었다. 서울 요지의 고급아파트인만큼 이틀에 한번꼴로 오는 마사지사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백화점에서 수백만원짜리 옷을 샀는데 마음에 안 들어 다시 사야겠다고 친구와 전화하는 것도 여러차례 듣다 보니 무덤덤했다. 거실을 청소하는 사이 잠옷차림인채로 커피를 마시면서 이곳 닦아라, 저곳 닦아라 하는 잔소리도 그럴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러나 한달여를 지나면서 빨래하라고 시켜놓고 거실로 불러내 커피잔이 제대로 안 닦였다, 침대보가 잘 씌워지지 않았다고 닦달할 때에는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많으니 일당을 좀 올려달라』고 했을 때의 매몰찬 태도는 정나미가 떨어졌다. 어른들은 물론 자식뻘인 스무살짜리 딸까지 말끝마다 반말을 하거나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물건이라도 들고 가는게 아닌지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도 견디기 어려웠다.
「힘있고 가진 사람들」의 분별없는 말과 행동은 「힘없고 못 가진 사람들」을 울리고 괴롭힌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모두가 쉽게 하지만 자신보다 조금만 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아무렇게나 대하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함께 사는 사회는 정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할 때 서로가 정을 느끼게 된다. 송파동에서 도배공으로 일하는 양모씨(48)는 『점심때가 되면 중국음식만 시켜주고 어디론가 가버리는 집도 있지만 밥상을 차려놓고 함께 먹자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대 한상진교수(사회학)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최소한의 인간적 예우와 존중이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작게는 거부반응이며 더 심하면 증오심, 적개심』이라며 『공존의 터를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만 나가는 돌진사회였으나 이제는 옆과 뒤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특별취재반】
◇특별취재반
임철순(기획취재부장)이준희(사회부) 이종재(경제부) 송용회(생활과학부) 권혁범(사회부) 김광덕(기획취재부)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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