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북구청 세무비리와 지존파 사건으로 시끌벅적하던 지난 주말 80여일 동안 공석이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에 이원순민족문화추진회장이 임명됐다. 관심있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무심히 넘길 인사인지도 모른다. 언론도 직급이 차관급인 이 인사를 수수하게 다뤘다. 흔히 차관급이라면 간략한 인물소개까지 해주는 게 관례였는데 어쩐지 생략되었다. 국사편찬위원장직이 이렇게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만의 경우 총통 직속기구로 부총리급 대우를 한다. 권한도 막강할 뿐만 아니라 최고의 존경을 받는 명예직이다.
이웃나라 얘기가 아니라 조선시대로 거슬러가 봐도 그렇다. 사관이 소속돼 있는 예문관이나 사적과 문한을 다루는 홍문관 대제학(정2품·장관급)은 선비라면 한번 해보고 싶어하는 멋진 자리였다. 뜻이 있는 학자는 세력있는 판서나 정승보다 이 청렴한 직을 좋아했다. 영명한 임금은 늘 『대제학감이 없다』고 한탄했고 학식있는 신하가 눈에 띌 때는 이 곳에 초치했다.
그래서 국사편찬위원장이 차관급이라는데 이의를 달아 본다. 더구나 교육부 산하에서 눈치를 봐야 한다는 점은 동정까지 간다. 우리나라는 조선왕조실록에 비변사등록, 그리고 그토록 자상한 승정원일기등 중국을 빼고는 세계에 유를 찾기 힘든 역사기록을 갖고 있다.
꼼꼼한 기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역사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한데 역사를 알고 있는 민족이 국사편찬위원장을 차관급으로 대접하고 예산으로 고작 연간 45억원을 배정하고 있으며, 후임을 80일이나 지나서 임명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예산을 보면 45억원 가운데 인건비가 21억원이고 사업비는 18억원, 연구비는 1억6천만원이다. 국민체육기금이 5천2백억원(93년말), 문예진흥기금이 1천8백30억원(9월말 현재)이나 적립돼 있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숙원이었던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사업이 지난해 겨우 끝난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세무비리와 연쇄살인사건을 맞아 우리 사회는 그 처리와 문제점 파악에 부심하고 있다. 그만큼 이번 사건이 사회에 준 충격과 영향은 심대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즉흥적인 접근보다는 근본적인 세상사에 좀더 진지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 올바른 인식이야말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예견케 하는 지혜를 줄 것이다. <문화1부장>문화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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