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러 무역규제법안 철폐 요청/국내정치의식 「동반성과」 기대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유엔총회연설을 위해 4박5일간의 일정으로 25일 미국을 방문했다. 옐친대통령은 26일 뉴욕에서 제49차 유엔총회에 참석, 러시아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연설할 예정이며 27, 28일 클린턴대통령과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29일 시애틀을 방문할 계획이다.
옐친의 방미는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과 같은 현안외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속에서 「종이호랑이」신세로 전락한 러시아의 외교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옐친은 유엔총회연설에서 대량파괴무기의 확산방지와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의 무기한 연장등 국제질서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구체적 제안을 할 예정이며 유엔의 역할강화를 주창할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러정상회담은 양국관계를 보다 실질적이며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는 방안이 주로 논의될 전망이다. 양국은 우선 군사안보분야에서 ▲핵실험 영구금지 ▲NPT체제 무기연장 ▲대량파괴무기 확산금지등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특히 북한등 일부국가들의 NPT체제이탈을 막고 핵물질을 비롯한 화학무기등 대량파괴무기들이 밀거래되지 않도록 공동 노력할 것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분야에서 러시아는 미국에 자국에 대한 각종 제재조치를 해제해 줄 것과 「잭슨 배닛법」등 과거 냉전시대 무역규제법안을 철폐해줄 것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의 대러시아 투자확대 및 에너지·석유분야에 대한 보다 과감한 진출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잭슨 배닛법의 철폐대신 이 법의 적용을 영구중지키로 하는등 양국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협정서를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분야에서는 보스니아내전을 비롯, 최근의 아이티사태까지 지역분쟁문제가 광범위하게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반도와 관련, 북미간 대화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공동인식하는 한편 북한의 경수로지원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양국간 관계가 상당히 돈독해질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불편한 이슈가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는 냉전시대이후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독주하는데 상당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고 미국의 러시아홀대에 대한 반발심리마저 일고 있어 옐친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이 분위기를 전달할 것으로 보여 회담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럽안보체제구축과 관련해서도 러시아군부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주도하는 신질서개편을 주장하고 있으나 미국은 나토와 평화동반자계획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등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반면 미국은 지난해 체결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Ⅱ의 조속한 이행을 러시아에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조약은 러시아의회에 계류중인데 의회내 보수파가 이 조약비준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정상들은 각각 국내정치를 의식, 심각한 이견을 노출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클린턴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옐친과 회담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옐친 역시 내달 의회개원을 앞두고 러시아의 체면과 자존심을 깎지 않는 선에서 미국의 경제지원을 따내는등 실리를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