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관련 각계 다양한분석 돋보여/연휴특집,TV·영화안내위주 개선을 지난 주 국내 일간지를 장식했던 두가지 커다란 사건은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 사건과 영광 지존파 사건이었다. 전자는 현 정권의 개혁의지를 비웃는 후안무치한 사건이었고, 후자는 우리사회의 누적된 병폐를 드러내주는 엽기적인 사건이었지만 그 두 사건은 모두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구청의 일개 말단직원이 거액의 세금을 착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단지 가진자들이 밉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인간을 그렇게도 잔혹하게 살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바로 오늘날 우리사회가 밑에서부터 철저히 부패해 있다는 것을 드러내주고 있다.
중요한 점은 밑에서부터 부패해있다는 것은 곧 위도 이미 부패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위층의 부정을 보며 살아왔기에 하위직의 부패가 가능했고 가진 자들의 방종을 보며 살아왔기에 못가진 자들의 행패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위직의 부정과 못가진 계층의 폭력은 쉽게 정당화되며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때에는 언제나 『왜 나만 갖고 이러느냐』고 항의하게 된다. 그것은 곧 우리사회가 지금 어느 외국언론의 보도대로 고질적인 부패와 황금만능주의로 인한 도덕과 윤리의 상실속에서 총체적 위기에 빠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은 그동안 그와 같은 사건들을 대개 선정적으로 다루어왔고, 당국 역시 언제나 사후약방문식으로만 처방해왔다. 지난주 「한국일보」역시 많은 지면을 할애해 그 두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이번 보도를 통해 「한국일보」는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사건들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사회의 문제점들과 병폐들까지도 심층 진단하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예컨대 22일자에 실린 지존파 사건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의 다양한 견해와 성찰은 바로 그러한 시도중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지존파의 잔혹행위에 대한 비난과 비판만큼이나 이 나라 졸부들의 방종에 대한 경고와 질타가 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곧 우리 언론과 지성들이 이제는 「아래(못가진 자)의 부정」만큼이나 「위(가진자)」의 부패」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단 「한국일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추석 연휴판 신문은 온통 텔레비전 프로그램해설과 영화·비디오에 대한 기사들로만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추석의 의미와 유래를 되새겨보는 문화기사도 같이 실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연휴동안 사람들이 내내 텔레비전이나 영화만 보고 지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국일보」의 창간 40주년 특집은 언제나 흥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22일자의 「한국인 생활의식과 행동경향 조사」 역시 재미와 유익함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기획기사였다. 분량도 그다지 많지 않아 읽는데도 별 부담이 없었다.
언론이 독자들을 가르치고 계몽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언론은 발로 뛰는 신속하고 정확한 뉴스, 공정하고 중립적인 해설, 그리고 개성있는 기사로 독자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한국일보」의 지존파사건 보도는 바로 그러한 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 디딤돌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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