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에게 고향이란 무엇인가. 자기예술의 출처요, 귀항지다. 한 예술인이 만년에 고향에 돌아오는 것은 평생의 예술적 성과를 고향에 바치기 위해서요, 예술인으로서의 그의 영광을 고향에 안겨주기 위해서다. 20년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81년 귀국한후 고향 마산에 정착했던 「흑단의 조각가」 문신씨(71)가 고향을 떠나겠다고 한다(한국일보 9월22일자 19면). 귀향 직후부터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산시 추산동 언덕바지에 필생의 사업인 자신의 미술관 건립을 시작하여 13년만인 지난 5월 마침내 개관을 하고는 그 넉달만에 애써 세운 미술관을 버리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문씨의 이향결심은 시당국이 미술관 주변에 고층아파트 건축을 허가하여 이미 착공된 이 건물들이 완성되면 넓은 야외전시장을 가진 미술관이 포위당하여 경관이 봉쇄된다는데 대한 항의다.
문씨는 미술관이란 본시 그 자체가 거대한 미술품이므로 환경이 절대적인데 이에 대해 시당국이 너무 몰이해하다고 분개한다. 예술가로서의 모멸감과 함께 고향으로부터의 배신감에 절망을 느끼고 있다. 그는 『고향에 오면 반겨줄줄 알았던 내가 어리석었다』고 탄식했다.
문씨의 좌절과 설움은 그 개인만의 것일 수 없다. 한 예술가의 옹고집으로만 치부할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 행정의 문화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시키는 것이다.
미술관을 건축하기 시작할 때부터 문씨는 까다롭기만한 행정의 무감각·무감동때문에 고군분투했고 이 환멸을 고향과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행정이 이번에는 다 그린 그림에 먹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우리나라에는 서울을 제외하고는 시립미술관이 한군데도 없다. 시로서는 엄두도 못내는 것을 예술가 개인이 세웠다. 사설이더라도 미술관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유의 문화재산이다. 문신미술관은 마산 시민의 것이다. 그런 미술관이 있다는 것은 시의 자랑이요, 그런 예술가가 고장을 지킨다는 것은 시의 영광이다. 이 자랑과 영광에 대한 몰지각은 행정의 수치다.
마산시는 문신미술관 주변이 재개발지역으로, 건설중인 아파트가 서민용이라는 것을 내세운다. 이 개발논리가 위험하다. 가시적인 것의 개발우위라는 행정생색주의가 모든 다른 가치를 뒷전으로 돌려왔다. 당장 우리가 시작해야 할 것은 문화개발이다. 그리고 서민의 이름으로 문화를 희생시키려는 것은 행정의 도명이다. 설령 서민을 위한 것이더라도 얼마든지 문화를 살리는 개발이 있는 것이다. 문화에 대한 행정의 따뜻한 관심이 문제다.
비단 미술관뿐이 아니고 마산시만도 아니다. 지방화시대를 맞아 각 지역의 특성을 살려가기 위해서는 지방행정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문화행정 전반을 재검토해야할 때가 됐다.
일껏 돌아온 고향을 다시 떠나야하는 한 노예술가의 뒷모습은 행정앞에 무력한 우리 문화예술의 실향을 보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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