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좌절」 처절한 영상으로 승화/우리에게…」 60년대 뒤틀린 미젊은세대 대변/폭력에 강한 집착… “살인자 동정한다” 비판도
감정분출의 궁극적 수단인 영화에서의 격렬한 죽음은 흔히 오르가슴에 비유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라스트신인 보니와 클라이드의 죽음은 처절의 극치를 이룬 절정이라고 해도 되겠다.
과다한 폭력과 유혈 때문에 개봉당시 격렬한 논란거리가 됐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67년)는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폭력을 근접시켜 보여준 아서 펜(72·ARTHUR PENN)의 대표작이다. 펜은 여기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절망감과 의문이 팽배하던 30년대초 경제공황시대를 주름잡던 보니와 클라이드의 강도행각을 통해 60년대 후반 미국사회를 휩쓸던 반체제·반문화·반전의 저항분위기를 병행, 비교하고 있다.
미국 남부출신 은행강도 보니 파커(페이 더나웨이)와 클라이드 배로(워렌 비티)는 『우리는 은행을 털어』라며 으스대면서 기념사진찍기를 좋아하던 촌티가 뚝뚝 흐르는 서푼짜리 범법자들이었다. 강도질과 사진촬영은 미국인들의 본질이 되다시피한 물질과 명성을 상징하는데 보니와 클라이드는 강도질하고 사진찍으면서 자신들의 전설적 위치를 스스로 즐겼던 뒤틀린 영웅들이었다.
적의를 지닌 체제와 그것에 저항하는 국외자간의 충돌 그리고 미국사회 풍토병인 폭력을 작품주제로 삼았던(니콜라스 레이감독이 연상된다) 펜의 주인공들은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그중에서도 가장 로맨틱하게 그려진 자들인데 펜은 이들을 황천길로 보내면서까지 그들의 죽음을 슬로모션으로 장렬하고도 아름답게 치장해 주고 있다. (둘은 1934년 5월23일 타고 가던 차 안에서 모두 1백87발의 총알을 맞고 죽었는데 보니는 입에 샌드위치를 문 채였다) 살인자들에 대한 이런 연민스런 묘사 때문에 펜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이유없는 반항」(55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힘차고 정확히 대변, 그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까불까불 농담하는 식으로 진행되다 점차 분위기가 어두워지면서 마지막에 가서 대혼란과 유혈로 종결되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범죄영화요, 블랙코미디이자 사회비판작품이다. 각본을 쓴 로버트 벤튼(후에 감독으로 변신,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아카데미 감독상수상)과 데이빗 뉴먼은 처음에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들인 장 뤽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에게 이 영화의 연출을 제의했다가 거절당했다. 영화스타일이 작품을 미적정체상태에서 해방시킨 누벨바그풍인 장르의 재구성자 펜이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뒤에 오는 피범벅 영화들(와일드 번치, 태양을 향해 쏴라)의 효시가 된 이 영화는 67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스텔 파슨스)과 촬영상(버네트 거피)을 받았고 펜은 감독상후보에 올랐었다.
「60년대의 대변인」이라 불렸던 펜은 TV와 무대서 철저한 연출수업을 마친 뒤 할리우드에 진출, 데뷔작인 서부무법자 빌리 더 키드의 이야기 「왼손잡이 총」(58년)에서부터 다짜고짜 폭력을 적나라하게 다뤘다.
펜의 이같은 폭력에 대한 집착은 그의 첫번째 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의 주도권쟁탈을 다룬 「기적을 만드는 사람」(62년)과 말론 브랜도, 로버트 레드퍼드, 제인 폰다가 나오는 폭력의 저류를 분석한 어두운 멜로물 「체이스」(66년)들에서 계속 나타난다. 펜의 작품활동은 서부신화를 깨부신 반베트남전영화 「작은 거인」(70년)이후 뜸해진다.【미주본사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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