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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빌려 주겠다” 재벌그룹 연쇄접촉/1∼2조 뭉치돈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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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빌려 주겠다” 재벌그룹 연쇄접촉/1∼2조 뭉치돈 사실일까

입력
1994.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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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2∼6% 5년거치” 파격적/현찰일 경우 보관불가능 분량/기업들 비공식조사 “허구인듯”/신당자금설도 무리… 재무부 “사기극” 단정 금융실명제를 시행한지 1년이상이 지나서 새삼스레 1조∼2조원의 거액현찰이 은신처를 찾아 기업들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실여부에 대해 궁금증을 일으키고 있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요모조모 따져보면 거액사채와 관련된 소문은 신빙성이 거의 없어 사기꾼들의 사기행각일 공산이 크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떠다니는 소문 그 자체가 많은 모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실명제이후 최근까지 S그룹 L그룹 D그룹등 국내의 유수한 재벌그룹들이 연리 2∼6%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거액의 자금을 쓰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것만큼은 사실이다. 상환조건도 거치기간 5년을 포함해 장기인데다가 대출조건도 상장기업의 보증등 간편한 것이어서 누구라도 쓰고싶은 유혹을 느낄 만하다.

 문제는 조건이 너무 터무니없이 좋다는데 있다. 접촉대상이 된 기업들은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재무부나 은행감독원등 금융당국에 사실확인작업을 거쳤다. 거저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의 조건을 내거는 거액의 돈이 과연 실제로 있을 수 있는지, 또 그러한 거액사채가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자금인데 괜히 썼다가 뒤탈이 나는 것은 아닌지등을 알아봤다.

 대기업과의 접촉에는 금융기관출신의 중개인이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누가 실제 전주인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얼굴없는 돈주인인 셈이다.

 돈을 보유하는 방법은 현찰 아니면 수표로 직접 갖고 있거나 은행예금으로 넣어두는 것외에는 달리 묘책이 있을 수 없다. 1조∼2조원의 거액사채가 어떤 방식으로 보유되고 있든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소문대로 문제의 돈이 현찰일 경우 구태여 은신처를 찾을 필요가 없다. 현찰만큼 안전한게 없다. 정부가 아무리 뛰어난 자금추적전문가를 투입하더라도 현찰은 추적이 안된다. 기업에 제시되는 조건을 보면 1조∼2조원의 거액사채는 이자를 챙기겠다는 목적으로 돈을 꿔주겠다는게 아니라 당분간 안전하게 거액을 기업에 묻어두겠다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길을 두고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겠다는 것은 돈의 속성에 스스로 위배된다. 또 현재의 실명제 아래에서 2∼6%의 낮은 금리에 만족하지 않고 10%이상의 금리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가명예금에 넣어뒀다면 불가능하지만 현찰이기 때문에 실명제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 더구나 1조원의 현찰이면 1만원짜리 지폐로 1억원이 들어가는 007가방 1만개가 있어야 한다. 부피만 따져서 8톤대형트럭 10대분이다. 이걸 어디에 안심하고 보관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1만원권은 9조원가량이 발행돼 있다. 소문의 거액사채는 발행된 1만원권 전체의 10∼20%에 해당된다. 이 액수를 현찰로 긁어모으려면 매일 은행에 가서 10억원씩 현찰을 찾아오더라도 3년이 걸린다. 조성할때 이미 꼬리를 잡혔을 것이다.

 1조∼2조원이 수표일 경우 수표의 원리상 그 액수의 돈이 은행별단예금에 들어 있어야 한다. 별단예금잔액은 총 12조원가량이다. 현찰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10∼20%를 쥐고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수표는 금융거래에 돌릴수록 정체가 드러난다. 현찰보다도 더욱 움직이기가 어려운 금융자산인 것이다. 수표를 1조원이상 모으는 것도 현찰 모으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은행예금일 경우 1조∼2조원의 돈은 이미 「실명제검사대」를 한번 통과한 자금이다. 아직 실명제검사대를 통과하지 않은 가명예금은 5백57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거액현금이 5, 6공 세력의 신당 창당자금이라는 설도 일부 정치권에서 나온다. 이것도 논리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다. 신당 창당자금이면 조만간 자신들이 직접 사용할 자금인데 어떻게 5년이상씩 장기적으로 남에게 맡기겠는가.

 재무부는 거액사채설의 진상이 커미션을 가로채기 위한 사기극이라고 사실상 단정하고 있다. 문의해 오는 해당기업에도 괜히 사기에 걸려들어 기업이미지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재무부는 막연한 풍문정도에 공권력을 발동해 조사에 나서는 것이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들 수 있다는 입장으로 터무니 없는 소문이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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