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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금강산」/민병용 본사통일문제연구소 연구위원(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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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금강산」/민병용 본사통일문제연구소 연구위원(남과 북)

입력
1994.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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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예찬은 옛 사람이나 오늘이나 한 마음이다. 17세기의 문인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외금강을 구경한 뒤 그 감탄을 시 한수에 담았다. 『봉우리는 말 못하고 웃음짓지 못하나 얼마나 행복한가, 아 얼마나 즐거운가』 한국에서 「그리운 금강산」이 애창되듯 북녘에서도 민요풍의 「금강산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경치도 좋지만 살기도 좋아/ 금강산 골 안에는 보물도 많네/ 비로봉 밑에서 산삼이 나고/ 옥류동 골 안에는 백도라지일세』

 북한핵 때문에 빚어진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올 한해도 혹시나 하던 금강산 구경은 끝내 이루어지지를 못했다. 하지만 외로움에 지쳐 있는 절대명승 금강산을 아시아 최고의 관광지로 다시 태어나도록 개발에 나섰다. 미래의 새 금강산―지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장엄한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황홀경의 휴양지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보일 날도 멀지 않았다.

 「금강산 국제그룹」은 북한당국으로부터 관광지조성을 위해 50년의 토지사용허가권을 받았다. 따라서 향후 10년 동안 호텔·골프장·케이블카·콘도미니엄·스키장·카지노·항구·공항등 대규모 유락시설을 건설하기로 했다. 고요히 잠들어 있던 「보석산」이 21세기에는 국제적인 관광지로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금강산 국제그룹은 1992년 5월 홍콩소재 「레인혼 앤드 라우회사」에 의뢰했고 현지답사등을 마친 뒤 1993년 3월 「관광지개발 타당성조사보고서」를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1월27일 북한 최고지도자로부터 최종승인을 받았다. 금강산관광개발은 우선 원산까지 이르는 1백9를 「금강산 자유무역지대」(총 면적 4천4백㎢)로 조성을 한다는 내용이다. 제1단계는 온정리에서 삼일포에 이르는 해변에 6천4백개의 객실을 갖춘 호화 호텔 10개를 건설한다. 이 때의 예상관광객은 연 50만명, 2차와 3차 계획이 완성되는 2004년에는 모두 36개의 호텔에 객실수는 2만2천개에 달한다. 한국 중국 일본 홍콩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은 연 3백만명으로 예상한다. 골프장도 모두 8개가 마련되고 금강산에서 40 떨어진 금란에는 새 공항이 들어선다.

 미주교포로서 1988년부터 북한과 외국의 경제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박경윤 회장을 동경에서 만났다. 『금강산개발은 후세를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민족의 명산을 남과 북이 공동으로 개발해서 세계의 관광객을 초청하자는 뜻이지요.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박회장은 미국과 북한의 3단계 회담, 또한 남북한 정상회담에 성과가 있으면 금강산개발은 급피치를 올릴 것으로 내다보았다.

 한국재계에서는 남북경협이 시작될 경우 1차적으로 추진될 사업으로 세 가지를 손꼽는다. 첫째가 남포공단개발, 둘째가 두만강자유무역지대개발, 그리고 셋째가 금강산개발이다. 기업인들은 「남북경협의 활성화가 통일에 이르는 첩경」이라고 믿고 있다.

 중앙대학의 이상만교수는 『경제는 남북한의 향후관계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통일경제학을 설명한 적이 있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의 접목이 가장 이상적인 민족경제권을 형성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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