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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조직의 집짓기/임철순(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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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조직의 집짓기/임철순(메아리)

입력
1994.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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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모두가 집을 짓는다. 학문의 집, 예술의 집, 정치의 집등 직업과 전공에 따라 모습은 각각 다르지만 인간은 집을 지어가면서 성장하고 그 속에서 생활하며 발전해간다. 살인조직 지존파일당도 집을 한 채 지었다. 그들이 지은 집은 두목 김기환(26)의 노모가 살던 초가를 허물고 세운 아지트였다. 『노인이 아들을 잘 두어 호강하게 됐다』고 주민들이 부러워했던 그 집은 그러나 살인공장이었다. 건축공사장에서 일을 배운 일당은 김기환의 설계대로 사람을 납치·감금하고 안전하게 죽일 수 있는 집을 지으면서 소각시설까지 설치하는 「창의성」을 발휘했다. 지존파는 그들의 창조적 능력을 「가진 자들」과 사회, 그리고 자신들을 파괴하는 데 소진했다. 그들이 막일을 했던 공사장의 건축물에도 눈먼 증오와 살의가 배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집을 짓는 것은 인간의 대표적 창조행위이다. 지상에 무엇인가를 만들어 세우는 창조행위는 인류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악행과 장난을 일삼아온 파우스트도 말년에는 해안선 일대의 황량한 소택지를 개척해 이상적 국토를 건설하는 일에 매진했다. 무한에의 동경은 다수의 행복을 위한 노력으로 승화돼 나이 1백세가 되고 눈이 먼 뒤에도 파우스트의 이상사회건설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아웃사이더」의 저자 콜린 윌슨은 인류범죄사를 다룬 저서에서 범죄는 세대가 교체될 때마다 새로워진다고 말했다. 인류의 창조에는 계속성이 있지만 범죄에는 계속성이 없으며 범죄자들의 성취는 허무의 성취일뿐 장본인과 함께 죽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또 범죄자들이 자기감정에만 사로잡히는 아이와 같으며 늙어 죽을 때까지 진정 어른다운 상태에 이르는 인간이 사실은 극소수라는 실망스러운 견해를 밝혔었다.

 인류역사는 범죄의 역사였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창조성과 범죄성의 조화가 사회발전을 이끌어 왔다. 독재자들이 이루어낸 세기적 토목공사들도 당대에는 숱한 희생을 초래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의미있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다.

 지존파는 어떤 유산을 남기는 것일까.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교정시설에서 창조의 의미와 보람을 배워 갱생의 길을 찾아간다. 지존파는 그러나 그 반대였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지은 집은 결국 자신들을 위한 죽음의 집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무슨 집을 어떻게 짓고 있는가. 지존파가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이 문제를 생각할 계기를 주었다는 점일 것이다.<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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