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말로도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공포, 전률과 비탄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처럼 잔혹과 흉악의 극한으로 치닫게 했는가. 전남 영광의 한 농가에서 저질러진 살육의 보도를 듣고 우리는 아득한 절벽으로부터 거꾸로 떨어지는 듯한 현기증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양심까지 넘어서
범인 중의 하나는 스스로 자기는 인간이 아니라고 뇌까렸다 한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이라 말하는 것조차 비웃는 말이다. 그러나 짐승이라도 그처럼 끔찍한 짓을 자행하지는 않는다. 「인면수심(인면수심)」이라는 관용어가 있기는 하나, 오늘의 사태는 이미 「수심」까지도 넘어선 것이다.
짐승의 잔혹함은 먹이를 얻거나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데 그친다. 아무리 흉포한 맹수라 하더라도 그의 잔인함은 생존을 위한 자연 원리의 소산일 따름이다. 증오심으로 남을 해치거나, 가학과 살육의 쾌락을 위해 같은 종의 개체를 죽이는 일이 야수의 세계에서 저질러진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 보지 못했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무서운 사건은 「수심」이 아니라 「인심」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사회전체의 위기
흔히 잔혹한 사건이 일어나면 으레 우리는 범인들의 심리를 정신병리학적으로 진단하거나 개인적 환경과 성격의 문제로 분석한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의 본질이 그보다 깊고 심각한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인간적 가치의 붕괴요 도덕의 파멸이다. 인간 세계를 떠받치는 도덕이 무너질 때 사람의 마음은 짐승의 마음보다 훨씬 더 무서운 파괴성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러한 사회 상황에까지 이르렀음을 이 사건은 말해주고 있다.
쾌락을 위한 돈 때문에 부모를 무참하게 죽인 「야타족」의 일로 우리가 경악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이제는 또 그 야타족을 포함하여 모든 가진 자들을 적대시하는 병적 증오심이 끔찍한 사회적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빈부의 차이나 지식 수준과 무관하게, 지역이나 환경의 차이도 가릴 것 없이 도덕의 붕괴가 심층화, 전면화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예외적 병리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위기를 입증하는 단면적 사실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산업화에 따른 불가피한 부산물로 본다면 그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논리요 도덕적 허무주의일 수밖에 없다. 산업화, 도시화가 도덕적 질서를 위협하는 여러 요인을 야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그러한 위험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사회적 통합을 성취하는 것이 참다운 발전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경제성장과 산업화가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정신문화의 결핍에 있음을 여기에 지적해 두고자 한다. 지난 30여년간 「잘살아 보세」와 「하면 된다」는 구호 속에 물질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동안 이 결핍현상은 나날이 가중되었고, 그 결과로 오늘의 사태에 이른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교육은 실패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판단이다.
○마음밭 농사 절실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사회를 「산업화된 야만」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다운 사람의 마음밭을 일구는 농사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물질적 풍요만을 숭배하느라고 내던져 두었던 인의의 정신과 문화를 다시금 우리의 교육 중심에 놓아야 한다. 교육을 단순히 기술인력의 공급 수단으로만 여기는 한 이 무서운 추락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제할 길은 없다.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즉 「인불인지심」이 있음으로써 사람은 사람다워지고, 사회는 사회다워진다. 그러한 마음이 모여서 이루는 「도리의 문화」는 법의 문화보다 우월한 것일 뿐 아니라 서구의 근대를 지탱해 온 「합리의 문화」보다 넉넉하고 강한 것이다.
오늘의 전률과 한탄을 며칠 동안의 일로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 무서운 사건이 울려 주는 경종을 깊이 깨닫고, 근원적 치유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물질적 파산은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도덕적 파산으로부터 재생하는 길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자신이 어디에 와 있으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냉철하게 성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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