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 양식 못살린 무대 우리나라 신극 초창기의 희곡 한편이 서울연극제 자유참가작으로 70년만에 초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연단소극장Ⅰ에서 공연되고 있는 김우진의 「난파」. 윤심덕과 자살을 하기 불과 3개월 전에 쓴 작품으로(1926년 5월) 그의 내면적 갈등이 드러나 있는 자전적 희곡이다.
신극운동의 선각자인 김우진(1897∼1925년)은 와세다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동안 1920년 동경유학생들로 구성된 극예술연구회를 발족시켜 서양의 고전과 대표적 근대극들을 접하면서 그들에 대한 뛰어난 비평들과 창작희곡 5편을 남겼다.
김우진 스스로 겉장에 「3막으로 된 표현주의극」이라고 독일어로 밝힌 「난파」는 당시 유교적 인습과 운명의 「인과율」 안에서 고뇌하며 현실로부터의 구원과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시인의 갈망을 상징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인물들은 모두 추상적으로 소개되어 있고 극의 구성은 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관념적 논쟁으로 전개된다.
난해한 내용, 생경한 언어, 낯선 시대상황으로 이루어진 「난파」를 요즘의 관객에게 어필시켜야 하는 과제를 연출 김성빈은 극중극의 틀로 풀어낸다. 이 장치는 관객을 「난파」의 세계로 인도하는 창의적인 대안이 되기는 하지만 그 역할을 담당하는 학생들의 감수성을 얄팍하게 설정해 그들이 「난파」의 시대적 정황이나 시인의 고뇌를 보편성있게 제시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이번 공연에서 「난파」의 연극성이 제대로 살지못한 이유는 표현주의적 양식의 무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데 있다. 연출은 문자적 표현주의의 해독에만 주력하고, 시인의 눈에 비치는 해체된 현실, 환영 속의 파장된 관점, 음울한 분위기등을 무대장치 의상 조명을 사용해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데는 소홀하다. 게다가 배우들은 초현실적인 대사를 사실주의적으로 감정을 실어서 전달하기 때문에 희곡의 정수를 드러내지 못한다.
미흡한 무대화에도 불구하고 난해한 작품을 끝까지 붙잡아 창작극의 한 뿌리를 드러낸 연출과 배우들의 열정이 값지다. 이번 공연은 오랫동안 사장되었던 난파선을 모래구덩이에서 끌어낸 것에 불구하다.
이 난파선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도도히 운행하는 명작으로 부활할 것인지 혹은 박물관의 유물로만 남을 것인지 알아보기에는 김우진의 작품세계와 표현양식의 깊은 천착과 실험이 필요하지만, 시대와의 불화로 파멸에 이르는 시인의 고뇌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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