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북 접근에 기득권상실 우려/긴박 한반도정세 적극개입 의도 김일성사망 이후 러시아 고위관리로는 처음으로 알렉산드르 파노프 외무차관이 지난 20일부터 5일간의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 이인규 북한외교부 부부장등 고위지도자들과 잇단 접촉을 하고 있어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의 방북은 북한의 김정일체제 출범이 임박한 시점인데다 최근 북미회담등이 열리고 있어 긴박한 한반도정세와 관련, 양국의 새 관계구축을 위한 입장조율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회담의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한핵문제 해결및 양국의 정치관계를 복원하는 방안등이 폭넓게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은 지난 90년 구소련과 한국이 수교한 이후 모스크바와 냉담한 관계로 돌아섰으며 러시아가 북한핵문제에 있어서 한국측 입장을 지지하고 한국전쟁관련 비밀문서를 한국측에 전달한데 대해서도 불쾌한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김일성사후 북한은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재개할 뜻을 밝히는등 관계개선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표시해왔다. 이와 함께 나진 선봉등 북한의 경제특구에는 이미 러시아기업 20여개가 진출해 있고 일부기업들은 나진항 공사에도 참여하는등 북한에서의 러시아측의 활동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측은 앞으로 북한과 미일의 수교로 양국기업들이 북한진출을 가속화할 경우 지금까지 자신들이 갖고 있던 기득권이 상실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양국간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냉각상태에 있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는 또 최근 한국, 미국, 일본등 3국이 공조체제하에 북한핵문제를 일방적으로 해결하려는 입장에 상당한 불만을 가져왔다.
이에 따라 파노프의 방북은 양국간 관계개선은 물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한반도 주변4강의 일원으로서 북한핵문제 해결에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미수교문제 역시 러시아는 한반도주변 4강의 남북한 교차승인이라는 테두리안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북한의 경수로지원문제와 관련해서도 국제적 재정지원이 이뤄지면 자국형 원자로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는 점과 대체에너지의 공급문제등도 북한측과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의 관계개선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러시아가 새로 출범할 김정일체제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것이다. 보리스 옐친대통령은 북한의 「9·9절」에 축하전문을 보낸바 있으며 파노프차관도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 지도부에 러시아가 북한의 새 정권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의 마리나 트리구벤코연구원은 『러시아가 북한과 점진적으로 관계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이 틈을 이용, 타국가들이 러시아의 이익에 반하는 북한과의 협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한반도문제에서 상당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파노프차관등 굵직한 인물들의 평양방문을 통해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복원,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도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급변하는 동북아질서 재편과정에 참여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듯하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