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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근작 「중심의 괴로움」「무」/김선학(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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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근작 「중심의 괴로움」「무」/김선학(시평)

입력
199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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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성과 생명사상의 조응 최근 출간된 김지하의 시집「중심의 괴로움」(솔 출판사)을 읽은 후 다시 「시와 시학」(가을호)에서 작품「무」를 읽었다. 1970년 첫시집 「황토」의 세계에 보다 많이 닿아 있었다. 초기 시집의 날카로운 서정이 더욱 폭넓고 깊이 있는 사상적 조응을 통해 시인의 원숙한 사색의 자취와 함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을 「실존적 치열성」이라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중심의 괴로움」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생명사상이다. 김지하는 자신의 정치적 경험과 생명에 대한 외경을 나란히 놓는다. 그에 있어서 생명사상은 모든 것을 살려내는 「살림」의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다.「살림」을 생명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한 힘이라고 파악한다. 그 힘을 통해 괴로운 정치적 경험을 확인하기도 한다.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을 본다. 괴롭고 흔들리는 속에서  <내일  시골 가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고 노래한다. 비우는 것을 「무」라고 본다면 피우는 것은 「살림」이다. 그것을 다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땅위의 풀과 벌레  거리의 이웃들  해와 달 별과 구름 모두 다  모두 다 죽어가는 이 한낮  내 속에  텅빈 속에  바람처럼 움트는  웬 첫사랑 우주 사랑>  (「무」에서). 비운다는 것, 텅 비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를 아무 전제도 없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지하는 그 텅빈 속에 「우주의 사랑」을 담으려 한다.

 격동하는 시대의 격랑에 휘말린 시인은 불행하다. 그 거센 풍랑에 비켜서서 안일을 탐했던 시인은 더욱 불행하다. 그들은 시인으로서는 서글픈 존재다. 시인이 시대의 파수꾼임을 자임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시인은 불행을 자초할지라도 자신의 시대를 정직하게 언어에 담아내는 책무로부터 벗어나서는 안된다. 누구보다 김지하는 불행을 감내하며 시대의 격랑과 맞선 시인이다. 그것을 그는 「중심의 괴로움」이라고 토로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괴로움을 힘으로, 힘에서「살림」으로, 우주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하는 곳에 김지하의 진면목이 있다. 시집「황토」에서 보인 서정성이 「오적」이 가진 비판적 현실인식과 어우러지면서 생명사상으로 모아진다. 「살림」의 큰영역으로 확대된다. 그것을 시집「중심의 괴로움」과 작품「무」에서 읽는다. 행동하는 지성과 사색하는 지성은 둘이 아니다. 행동과 사색은 하나다. 하나여야만 한다. 시를 포함하는 문학은 예외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을 김지하의 시에서 또다시 확인하게 된다.<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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