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초년의 어느 부부가 재작년 중학생 두 자녀와 함께 이민을 떠났다. 외아들인 이 이민가장의 어머니(68)는 아직 건강이 좋고 경제력이 있는데다 객지생활도 싫어 『3∼4년 해외근무를 해야 하게 됐다』는 아들의 말을 믿고 따라서지 않았다. 한 두해 더 근무하고는 귀국하려니 생각하며 혼자 살고 있는 이 부인의 늘 환한 얼굴에 오히려 주위사람들이 안쓰럽다. 이번 가을 그아들이 서울의 친구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아버지의 묘소까지 이장해 합장할만한 명당자리를 미리 사두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산 부모 모시기보다 명당발복설에만 넋을 뺏긴 이 시대 우리사회의 웃지 못할 우화와도 같은 이야기다. 풍수지리나 관상·역술을 전통지리학의 한분야로, 또는 경험을 토대로 한 통계학이나 동양사상의 응용으로, 학문적 연구를 통해 그 근거를 밝혀보려는 학자들의 노력까지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의도와 학문적 원류를 왜곡한 잡술풍수와 무속이나 미신을 마치 우리의 전통, 토착문화 그 자체인 것처럼 얼버무리는 사이비 역술인·점쟁이들의 돈벌이 판이 되어 있다는게 문제다. 요즘 특히 그 도가 지나치다. 묘지 투기가 전국에 번져 있다. 공원묘지의 웬만한 터가 다 투기꾼들 손에 넘어가 웃돈을 주지 않으면 묘지 사기가 어렵다고 한다. 일부 큰손 투기꾼은 유명한 「지관」을 동원해 전국산야의 노른자위 명당을 골라 사들인 다음 브로커를 중간에 넣어 부유층에 접근, 수천만원씩 웃돈을 챙긴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 김일성이 죽은뒤 어느 역술인이 그 시기를 비슷하게 예언했다 해서 화제가 되더니 온갖 예언 점술서가 범람하며 점보기, 사주팔자타령이 어지럽다. 남북관계전망까지도 북한의 실상이나 한반도 주변정세를 분석한 사회과학서적들은 거의 찾는 사람이 없고 이에 관한 예언·역술서적이 김일성 사망전보다 열배이상 더 팔린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사회분위기의 확산에 일부 지도층과 언론도 한몫을 한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90년2월 청와대경내의 대통령관저 신축공사를 시작하며 천하명당터라는 풍수설이 공공연했다. 91년 봄 내자동의 당시 서울시경청사에 붙어 있던 내자호텔이 도로확장공사로 철거되면서 호텔쪽에 나게 될 북문을 시경청사의 정문으로 하느냐 후문으로 하느냐를 두고도 간부들 사이의 풍수논쟁이 시끄러웠다. 며칠전에는 어느 시중은행의 본점터가 남산3호터널의 「악기에 찔려」 이 은행이 쇠락의 길을 걷는다는 지관의 말에 부근의 명당자리로 이전을 검토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6일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94년 세계경쟁력보고서는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주요41개국중 24위,특히 국제화와 금융등 2개부문은 각각 꼴찌에서 두번째인 39위임을 밝히고 있다. <생활과학부장>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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