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씨부부 검소·금실도 좋았는데…” 울분/「윤화사」장례까지 치른 이씨부모 넋잃어 「지존파 살인기계」들은 길가는 20대 여인을 연습삼아 강간·살해하고, 납치한 여인에게 애인의 살해를 거들게 했으며, 중년부부를 납치·살해한뒤 시신을 토막내 소각했다. 이들은 또 조직을 이탈하려는 일당까지 살해하는등 현재까지 무려 5명을 「도륙」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범행수법등으로 볼때 무고한 피해자가 더 있을 가능성이 많다.
신원이 밝혀진 피해자 가족들은 끔찍한 피살소식에 넋을 잃은채 외부인과의 접촉을 완전히 끊고 있다. 잔혹하게 살해된 경남 울산 온산공단내 삼정기계공업(주) 대표 소윤오씨(42)와 박미자씨(35)부부는 지난 13일 경기 성남의 부모묘소에 벌초를 갔다가 이들의 마수에 걸렸다. 가스총을 맞고 실신, 전남 영광 아지트로 끌려간 소씨 부부는 14일 회사 심성수부장(35)에게 연락해 광주에서 현금 8천만원을 받아 범인들에게 넘겨주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끝내 불에 탄 유골로 발견됐다.
소씨 부부 집인 서울 중랑구 중화1동 극동아파트 810호에는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친인척들이 모여 통곡만 계속하고 있다. 소씨가 울산에서 공장을 경영하기 때문에 주말부부인 이들은 토요일의 경우 부인이 비행기로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과 함께 상경하고 월요일에 남편이 울산으로 내려갈 때에도 어김없이 함께 내려갈 정도로 금실이 좋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주민들은 『워낙 검소하게 살아 회사를 경영하는지도 몰랐다』며 『부모의 묘소에 벌초간 사람을 죽이는 「짐승」들이 어디 있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소씨는 심부장으로부터 광주 광산버스종합터미널 부근에서 돈을 넘겨받을때 부들부들 떨며 『납치 당했다. 빨리 돈줘. 따라 오지 말라. 회사 잘 부탁한다』고만 말한뒤 범인들이 기다리는 승용차로 돌아 갔다고 심부장은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다. 소씨는 범인들이 아지트에 인질로 잡고있는 부인의 안전을 위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씨 회사 직원들은 『사장님이 93년 경영상태가 좋지 않던 회사를 인수해 1년만에 월 매출액 1억∼2억원의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만들었고 다른 업체와 달리 어려울 때도 월급과 수당부터 먼저 지급했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애인과 드라이브를 즐기다 경기 양평 노상에서 범인들에게 납치·살해된 뒤 교통사고로 위장됐던 이종원씨(36·악사) 부모는 교통사고로 죽은 줄로만 알고 시신을 수습해 장례까지 치른뒤 경찰에서 살인극을 연락받고 실신했다.
이씨와 함께 납치됐다 극적으로 탈출, 살인집단을 신고한 이모양(26)은 비록 살아 남았지만 인격의 파괴를 강요당한 이 사건 최대의 피해자다. 범인 5명은 이들을 지난8일 영광 아지트로 끌고간 후 이양을 지하감방에 가두고 집단으로 욕보였다. 이씨가 돈을 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범인들은 이튿날 밤 이씨에게 술을 먹이고 비닐봉지를 얼굴에 뒤집어 씌운 뒤 공포에 떠는 이양에게 『살고 싶으면 거들어라』며 이씨 뒷목을 붙잡게 했다. 애인이 눈앞에서 질식해 숨져가는 것을 목격하고 제정신이 아니게 된 이양은 15일 범인들이 소씨부부를 살해할 때도 강요에 의해 공기총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범인들은 『안쏘면 너도 죽는다』고 위협했고 방아쇠를 당긴뒤 울부짖는 이양을 보면서 낄낄거리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범인들의 노리개가 된 이양은 폭발물설치 연습을 하다 화상을 입은 범인 김현양(22)의 병간호역으로 병원에 함께 갔다가 탈출해 서울로 올라와 경찰에 신고했다.
범인들이 지난 7월 충남 논산에서 납치해 번갈아 욕을 보인뒤 『사람은 이렇게 죽이는 것』이라며 목졸라 살해해 부근 야산에 암매장한 20대여인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논산 주민들은 집나간 여자가 있는지 서로 물으며 공포에 떨고 있다. 범인들은 이 여인을 살해한뒤 조직원 송봉우씨(20)가 『꿈에 귀신이 보인다』며 조직이탈 조짐을 보이자 아지트 인근 불갑산으로 끌고가 단검으로 마구 찌른뒤 곡괭이로 머리를 수차례 찍어 살해, 암매장 했다.
「지존파」의 천인공노할 범행이 알려진뒤 「전국실종자 가족모임회」 사무실과 각 경찰서에는 실종자를 둔 가족들로 부터 『살해된 사람의 이름과 인상착의를 알려달라』는 전화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전국이 납치·살해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
범인 대부분의 고향이고 범행 현장인 아지트가 있는 영광군 불갑면 주민들은 『어떻게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생겼느냐』며 분노와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박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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