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생당의 오자와(소택일랑)대표간사를 전담했던 한 기자가 그의 「오프 더 레코드」(보도금지)발언을 월간지에 폭로,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문예춘추 10월호에 게재된 「오자와와의 결별」이란 기사는 지지(시사)통신 정치부의 다자키 시로(전기사랑)차장이 실명으로 쓴것으로 일본정계 거물들에 대한 오자와의 혹독한 비평이 골간을 이루고 있다. 문제기사의 내용을 보면 오자와가 지난6월 자민·사회·사키가케가 무라야마(촌산부시)사회당위원장을 총리로 추대한데 맞서 구 연립여당측의 대항마로 내세웠던 가이후(해부준수)전총리에 대해 『가이후는 진짜 멍청이야. 우노(우야종우전총리를 지칭)가 오히려 나은편이야. 우노는 설명을 해주면 알아듣는데 가이후는 설명을 해도 몰라.와타나베 고조(도부항삼쌀생당대표대행)까지도 가이후를 바보로 취급하고 있어』(89년12월)라고 혹평했다.
또 쌀생당당수로서 과거부터 오자와가 「에이스 카드」라고 칭해왔던 하타(우전자)전총리에 대해선 『포용력이 좁아 그의 한계가 (자민)당내에 알려져 있다』(90년10월)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지난 6월 가이후 옹립시 도움을 청하기 위해 본인앞에서 『일본의 앞날을 제시한 대재상』이라고 추켜세웠던 나카소네(중증근강홍)전총리에 대해서는 『우리 다나카파가 나카소네를 총재로 추대한 것은 메고가는 가마가 가볍고 중심이동이 쉽기때문이야. 메고가는 쪽의 의사대로 움직일수 있는 사람』(82년11월)이라고 평가했다.
오자와는 지금은 정적이 됐지만 과거 자신이 모셨던 다케시타(죽하등)전총리에 관해 『결코 불만을 직접 표시하지는 않아.사람을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점에서 노회한 악인이지』(88년8월)라고 그의 술수를 비난했다.
다자키기자는 82년부터 자민당을 출입하며 당의 주류인 다나카(전중각영)파와 다케시타파만을 전담, 이들 파벌의 실세로 금권정치의 핵심인물이었던 오자와와는 13년전부터 친한사이였다.다자키는 오자와의 정치참모역할로 그의 기자회견에 앞서 예상문답집을 작성하기도 했으며 오자와의 정치공작에 대해 충고도 서슴지않아 『오자와의 친위대』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런 그가 폭로기사에서 오자와가 내심 형편없는 인물로 평가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정치개혁의 기수」등 갖가지 표현을 동원해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오자와와 결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오자와의 연극에 속고있기 때문에 그이 실체를 국민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오자와는 현재 공산당을 제외한 야당 10당파가 추진중인 신신당준비위원회의 책임자(신당협의회세화인회의 좌장)로서 신신당이 결성되면 가이후당수밑에서 간사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당협의회는 지금도 며칠에 한번씩 모임을 갖기때문에 오자와는 가이후전총리, 하타쌀생당수등과 수시로 얼글을 맞대고 있다.
오자와는 이 기사에 대해 『읽어보지 않아 내용을 모른다. 나는 기본적으로 공개회견에서 말하는 내용을 다른 자리에서도 똑같이 얘기하고 있다』면서 가이후나 하타에 대한 혹평사실을 부인했다.
쌀생당을 비롯한 야당 일각에서는 수년전에 일어난 일을 야당 통합이 추진되는 현 시점에서 폭로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현 연립여당의 배후인물로 알려진 다케시타전총리가 야당파괴공작의 일환으로 다자키기자를 이용한것이 아니냐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도쿄=이재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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