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속 「한국알리기 행사」 턱없이 부족 남편이 외교관이라 대략 3∼4년마다 이사를 다니곤 한다. 지난해 3월에도 남편이 급작스레 8월말부터 한국에서 근무하게 됐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 때만 해도 우리는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물론 나중에야 내 조국 네덜란드가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또 17세기 조선을 발견한 뒤 그 역사를 기술한 최초의 유럽인이 네덜란드인 하멜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으로 간다는 통보를 받은 후, 남편과 나는 시내곳곳의 도서관과 서점을 뒤졌지만 한국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때 운좋게도 우리는 벨기에 북부지역이자 유럽문화의 중심지인 앤트워프에서 한국전시회가 열리고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곳에 즉시 달려간 우리는 한국이 자랑하는 청자, 백자등 빛깔이 은은한 도자기류와 특색있는 그림들을 처음으로 관람했다. 그 전시물들을 보면서 동양의 신비를 간직한 한국에 대한 궁금증이 더 늘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더 이상의 정보를 얻기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여행가이드를 통해서야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한국은 서울올림픽등으로 예전보다 유럽에서 더 많이 알려져있긴 하다. 하지만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자료나 행사가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 세계화 국제화되어 가는 추세를 따라잡으려면 경제발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자국을 여러모로 알리는 행사나 정보교류도 필요하다.
한국에 도착한 뒤 우리는 살 집과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찾아야 했다. 다행히 알음알음으로 집을 가까스로 얻을 수 있었다. 조금씩 한국의 생활양식도 체득하게 됐다. 집안내부에 설치된 난방·배관등으로 마치 증기선에 사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는 한국의 집구조는 처음엔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나자 이 기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를 않았다. 집주인은 임대에만 관심이 있어, 미처 발견치 못한 잘못된 것들을 수리해주려고 하지않았다. 우리는 수도꼭지에서 바람빠지며 들리는 「삑」소리를 여러차례 들어야했고 냉·온수가 수시로 바뀌는 샤워기를 감내해야했다. 방을 고루 데워주지 못하는 난방기구는 물론이거니와 수도관에 물이 새는 경우까지 빈번했다. 수도관이 파열된 곳은 정원이라 다행이었지만, 그러나 엄청난 양의 물을 아깝게 낭비해야 했다. 유럽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들이었다.
사회란 구성원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한울타리다. 그런데 한국에는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며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한편에선 자기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한국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수레바퀴의 양축처럼 서로가 도와가며 끌어주는 공존의식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