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치있고 통렬한 “언어의 마술사”/각본가로 영화입문… 유려한 글솜씨 자랑/아카데미 2연속 2관왕 신화도 유난히 말이 많은게 조셉 L 맨키위츠(1909∼93)의 영화다. 각본집필과 연출은 영화제작이라는 한 과정의 두 측면이라고 주장한 맨키위츠는 그래서 잘 써진 각본은 이미 연출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각본지상론자였다.
자연히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의 말들은 고도로 교양있고 문학적이며 냉소적이어서 명작소설을 읽는 것 같다. 맨키위츠의 이같은 말재주가 빼어나게 나타난 것이 브로드웨이 연극세계를 신맛이 나게 파헤친 「이브의 모든것」(50년)이었다. 맨키위츠에게 아카데미 감독·각본상의 2관왕을 안겨준 것 외에도 남자조연(조지 샌더스), 의상등 모두 6개부문 수상작인 이 영화의 대사는「필름위트의 최고 본보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사가 어찌나 아프고 시고 통렬한지 「악취미」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명문가 오스카 와일드의 글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고참 여배우 마고(베티 데이비스)가 드라이마티니를 연거푸 마신뒤 자기집 파티 손님들에게 『좌석벨트를 매세요.거친 밤이 될테니까요』라고 던지는 경고는 지금도 자주 인용되고 있는 대사다.
19세에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뒤 베를린에서 시카고트리뷴지기자로 일한 맨키위츠는 20년대 후반 할리우드에 먼저 진출한 각본가 형 허만(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 각본)을 따라 할리우드에 왔다. 처음에는 각본가와 제작가(「분노」 「필라델피아 이야기」)로 시작한 그는 지적이고 음침한 멜로물 「드레곤 윅」(46년)으로 감독에 데뷔했다. 초기걸작으로는 아름다운 진 티어니가 나온 분위기 있는 초자연적 로맨틱영화 「유령과 뮤어부인」(47년)이 있다.
맨키위츠의 유려한 글솜씨와 성숙한 작품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 「세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49년). 잘 사는 세 쌍의 부부의 자기만족에 빠진 결혼생활을 고찰한 이 작품으로 맨키위츠는 아카데미 감독·각본상을 받았는데 이듬해 「이브의 모든것」으로 똑같은 상을 받아 두 해 잇달아 아카데미 2관왕이라는 신기록을 남겼다.
조용하고 소리 한번 안질렀던 맨키위츠의 작품특징은 형태의 정확성과 세련미 그리고 풍부한 지성과 위트. 그는 한 작품에 여러 장르를 섞어가며 창조적 자유와 지적 깊이를 고루 추구했는데 플래시백기법을 즐겨 썼다.
「유령과 뮤어부인」은 드라마와 코미디를 섞은 것이며 말론 브랜도가 노래부르는 스타일 좋은 「아가씨와 건달들」(55년)은 코미디에 심각한 사회문제를 접목시켰고 「낯선자의 집」(49년)은 멜로드라마에 폭력과 사회적 관심사를 혼합한 것이다. 그는 역사물까지 다뤘는데 셰익스피어원작의 「줄리어스 시저」(53년)는 걸작인 반면,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의 결합이라는 에피소드를 남긴 「클레오파트라」(63년)는 제작사인 20세기폭스를 들어먹을 뻔했던 초대형 흉물이다.
맨키위츠는 또 계급차(맨발의 백작부인), 부에의 집착(꿀단지), 늙는 것(지난 여름 갑자기), 물질적 안락(세아내에게…) 및 표면적인 양태(다섯 손가락)같은 다양한 주제를 중립적 입장에서 관찰하는 식으로 다뤘다.
연극애호가로 언어가 영상스타일을 앞서 감독이라기보다는 각본가라는 소리를 들었던 맨키위츠의 영화는 연극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어떤 영화들은 속도가 느리고 시각적 흥미가 약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맨키위츠는 그 날카로운 위트 하나만으로도 팬들에게 고급기쁨을 제공해준 명장이다.<미주본사편집국장대우>미주본사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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