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측 “정당” 강성주장에 심기불편 여권/“신군부 먼저 출동… 반란” 잠정결론 검찰▷정치적파장◁ 여권이 12·12사건의 정치적 처리를 놓고 적잖이 고심하고 있다. 전두환전대통령이 답변서를 제출하면서 『12·12는 내란용의자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사건일뿐이며 하극상이나 쿠데타가 결코 아니다』고 주장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씨의 입장은 지난해 12·12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 라고 개념규정한 김영삼대통령의 「사관」과 정면배치되며 『전씨가 검찰제출 답변서를 빌려 김대통령의 말을 반박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물론 청와대와 민자당은 『피고소인의 입장에서 무슨 주장인들 못하겠느냐』며 표면적으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80년 전후의 체험이 아직 생생한데다 정승화씨등 피해자들의 얘기가 국민적인 설득력을 얻고있어 검찰수사과정에서 진상과 성격이 밝혀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여권관계자들의 내심이 반드시 편한 것 만은 아니다. 2개월가까운 작업끝에 작성된 전씨의 답변서에서 『12·12는 상급자대 하급자의 문제가 아니라 수사담당자가 범법용의자를 조사한 일로 이해해야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헌정질서등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사태를) 쿠데타라고 하거나 군사반란이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등의 강성주장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정가관측통들은 『수사가 진행돼온 저간의 사정을 감안할 때 전씨측이 강도높은 정공법을 취하고 나온 배경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그것이 예상수위를 넘어설 경우 여권이 부담스러워 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여권핵심부는 검찰수사결과를 지켜본뒤 ▲전직대통령의 신분 ▲국민적 정서 및 사회적 파장 ▲경과된 시일등을 종합고려해 최종적인 사법판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이었기에 전씨측이 좀더 자숙하는 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한 측면도 있다.그러나 전씨측이 앞장서 12·12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온 이상 진상규명과 사법조치를 별개차원으로 접근하려던 여권의 복안이 차질을 빚게될 가능성도 있다.
여권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또하나의 대목은 전씨가 「국민에게 드리는말씀」을 통해 89년 12월15일의 「4당합의」를 거론한 것이다. 전씨는 『당시 노태우대통령과 김대중평민당총재 김영삼민주당총재 김종필공화당총재등 여야 4당대표가 본인의 국회출석증언등을 끝으로 5공청산 문제의 처리를 모두 종결짓기로 합의하고 국민앞에 약속했다』고 상기시킨 것이다.
이러한 전씨의 언급은 어떤면에서 김대통령에게 12·12사건의 정치적해결이라는 약속이행을 간접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권이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앞두고 김대통령을 들먹이며 공공연히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는 것이 심히 못마땅하다는 눈치이다.【이유식기자】
▷사법적처리◁ 12·12관련 고소·고발사건수사가 전두환전대통령의 답변서제출로 사실상 종결됐다. 지난해 7월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 장태완전수경사령관등 22명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신군부측 핵심인사 34명을 고소·고발한 이후 14개월여 만이다.
최규하전대통령의 참고인진술이 남아있지만 답변서 제출은 불투명한 상태이다. 검찰도 최전대통령의 답변에 큰 기대는 걸고있지않다. 주요 고소·피고소인조사에서 12·12사태의 객관적 사실관계는 이미 드러났다고 보고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의 답변내용이 예상됐던 내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12·12사태는 정총장이 10·26 대통령시해사건에 개입된 혐의가 드러나 연행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정권찬탈의 의도는 없었다』는 공통된 주장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12일 두 전직대통령의 서면조사결정 직후 12·12사태의 객관적 사실확인과 적용법률 검토작업에 착수,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법적 처리의견을 가급적 9월말 이전에 결정짓고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안이 갖는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검토작업에 시간이 걸려 10월초로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1백50여명에 달하는 고소인 피고소인 참고인을 조사, ▲대통령의 재가가 나기전에 계엄사령관인 정총장을 연행한 점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병력을 동원,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한 점등은 부인할 수 없는 군형법상 반란에 해당된다고 잠정결론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동안 신군부측의 병력동원과정 검토과정에서 신군부측의 1공수여단이 장수경사령관을 정점으로 한 육군본부측의 9공수여단병력보다 먼저 출동했던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육본측의 병력이 실제 출동하지 않은 12월12일 하오10시 박희도준장의 1공수여단이 육본점령을 위해 출동했다가 되돌아갔으며, 다시 이날 밤 12시께 육본측의 9공수와 함께 재출동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시 합수부측에 속한 보안사가 군병력이동을 감지할 수 있는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군부측이 이같은 정황을 전혀 몰랐을리 없다는 점에서 병력을 먼저 동원한 신군부측에 군형법상 반란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이같은 혐의를 인정했다 해도 기소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이다. 「성공한 쿠데타」의 주역들을 처벌함으로써 야기되는 5·6공 역사부정과 현 정치권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들 위험이 크다는 점을 검찰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내부적으로 기소의견도 있지만 검찰이 신군부인사들을 법정에 세우는 법적·역사적 부담을 모두 떠안는 모험은 감행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황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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