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누리예프와 마것 폰테인이 「해적」 그랑 파드되(주역들의 2인무)를 추었을 때 뉴욕의 관객은 20여분간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다. 그들의 기량도 뛰어났지만 그보다는 강인하고 생동적이며 누구에게나 이국적인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해적」의 매력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런 이유도 우리 발레계의 남성들 또한 「해적」을 즐겨왔다. 그러나 모두 파드되나 솔로에 그쳤고 춤의 맥을 이해할 수 있는 전막공연은 이번이 한국초연이다.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해적」(9·9·14)은 무더웠던 여름을 극복한 더 큰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모든 단원의 의욕이 안정감 있고 화려한 무대를 꾸며냈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노예상인(이작)역 신무섭, 그리스 소녀(귈라나)역 스페트라나 최, 선장(비르반토)역 제임스 전은 각기 기량과 연기의 조화로 제 몫을 해내 이번 무대의 스타로 부각됐다. 이들의 연기에 극적 분위기를 더해준 금난새의 연주 또한 발레공연에서는 보기드문 부조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근본적 해결책을 기다리고 있는 문제점들도 발견된다. 버전(작품해석력)이 불분명한 점에서 시작된 미흡함이 작품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그리스와 터키목장의 디자인과 색감은 수준미달 상태였다.
「해적」이 「백조의 호수」보다 덜 유명한 이유를 찾으면 연출이 어렵고 극 전체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일례로 키로프 발레단의 「해적」 역시 다른 발레에 비해 산만한 느낌을 주는데 내편과 네편을 시각적으로 구분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많은 배역이 극을 끌어나가기 때문이다.
매번 경험하게 되듯 이번 무대 역시 이러한 분위기 전환의 미적지근함이 작품의 맛을 잃게 했고 맛이 없는 발레는 같은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든 비슷한 요리처럼 매력을 잃는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해적」에 능통한 요리사를 초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문제를 재정상태가 감당을 못한다고 한다.
이제 국립발레단의 선택폭은 명확해졌다. 레퍼토리 개발을 포기하거나 매력없는 공연으로나마 만족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번 무대의 화려함과 안정감이 후원회와 예술감독이 발로 뛴 결과임을 생각하면 투정부릴 면목도 없다. 「해적」을 본 후 며칠동안 답답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무용평론가>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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