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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초 야음틈타 「기습 진격」/미언론이 전하는 아이티침공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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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초 야음틈타 「기습 진격」/미언론이 전하는 아이티침공 시나리오

입력
1994.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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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특공대 최선봉 “10일작전”/낙하산부대 거점장악→상륙작전→주요도시 접수/미항모2척 등 군함20여척·18개국 2만여명 동원 다국적군의 아이티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미언론들이 전하는 침공시나리오에 의하면 내주초 새벽께는 진격의 첫 총성이 울려퍼질 것같다.

 미국을 포함, 18개국으로 구성된 2만여명의 다국적군은 아이티의 군사독재정권 축출을 위해 카리브해상으로 속속 집결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지난주 푸에르토리코에서 「침공을 위한 마지막 리허설」을 모두 끝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수순은 빌 클린턴미대통령의 대아이티 최후통첩뿐이다.

 이번 침공작전에는 지휘사령부인 USS 마운트휘트니호를 비롯, 아이젠하워등 항공모함 2척과 순양함 3척, 프리깃함 5척, 구축함과 상륙함, 순찰함 2척, 해양감시선 3척, 병원선 USS 컴포트호등 20여척의 군함이 동원된다.

 그러나 이번 침공은 91년 이라크전때의 「사막의 폭풍」작전처럼 가공할 공군력과 첨단과학무기를 총동원한 융단폭격이 아니라 한밤에 이뤄지는 「조용한 공격」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높다. 아이티 국민들은 다음날에야 미군의 침공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침공가상도는 먼저 최정예 특공대원들이 수도 포르토 프랭스에 침투해 주요정부기관을 점령하고 이어서 아이티근해에 대기중인 다국적군중 해군 2천6백여명이 상륙, 수도를 장악한 뒤 육군주력부대가 나머지 도시들을 접수하는 3단계로 구성돼있다.

 침공의 최선봉은 미특공대의 대명사인 그린베레등 3개부대가 맡는다. 12명으로 한조를 이룬 8개조의 특공요원들은 야음을 틈타 낙하산으로 소리없이 포르토 프랭스로 침투한다. 이들은 이미 수십차례 반복한 도상연습대로 신속히 주요도로를 봉쇄하고 군통신체계를 차단, 아이티군을 무력화시킨 뒤 군기지와 방송국등 전략거점을 장악한다.

 그린베레의 침투와 동시에 미육군 최정예부대인 레인저대원 9백명이 국제공항과 군공항 두 곳을 순식간에 점령한다. 이때 해군의 간판격인 실(SEAL)대원 3백여명은 항구등 해안목표물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이 1단계작전이 끝나면 해병대의 상륙작전이 포함된  2단계의 본격 육해군입체작전이 시작된다. 이때 1단계작전에 투입된 그린베레등 특공대원들은 1차목표를 달성한 뒤 아이티 군지도자들의 체포에 나선다. 여기엔 82공수부대원들도 가세한다.

 항모 아이젠하워호는 수송기 C130을 통해 대기중인 육군제10산악부대원등 전투병력과 장비를 아이티에 침투시키고 플로리다해협서 쿠바난민구조작업을 하다 아이티공격임무를 맡은 USS 휘트베이 아일랜드호는 대형수송함인 호버크래프트 8척의 도움을 받아 장갑차와 전투병력을 곧바로 해안에 상륙시킨다.

 마지막으로 육군이 상륙정을 타고 들어가 전국 주요 거점도시를 접수한다. 여기까지의 소요시간은 길어야 10일이다.

 이번 작전의 성공여부에는 날씨가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공수부대원들은 희미한 달빛 아래서의 공격을 선호한다. 또 이맘때쯤이면 카리브해에 폭풍우가 몰아칠 수도 있다. 내주초를 D데이로 잡은 것도 이런 점을 고려해서이다.

 미군이 우려하는 것은 아이티군의 저항보다 아군끼리의 오발사고다. 아이티군은 총병력 7천명중 겨우 4백명만이 제대로 훈련받은 군인들이다. 이들은 지난달 미국헬기가 선무공작을 위해 출현하자 공습으로 오인, 도망칠만큼 싸울 의지도 능력도 없다. 이때문에 미국의 최대관심사는 승리보다는 미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조상욱기자】

◎고국귀환 손꼽는 아리스티드/90년 첫 민선대통령… 집권7개월만에 축출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아이티 침공이 임박함에 따라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아이티대통령(41)은 군사쿠데타로 축출된지 3년만에 권좌복귀를 바라보게 됐다. 카리브해에 집결중인 다국적군은 이미 아리스티드의 귀환을 알리는 선무전단을 뿌리고 있다.

 아리스티드는 분명 행운아다. 그는 장 클로드 뒤발리에대통령의 15년 군사독재가 무너진 뒤인 지난90년 12월 치러진 자유총선거에서 70%의 압도적 지지로 사상 첫 민선대통령에 당선됐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지 1백80년만의 일이다. 그는 그러나 아이티의 역사를 점철해온 군사독재의 잔재를 극복하지 못한채 91년 9월 집권7개월만에 쿠데타로 쫓겨나는 불운을 맞았다.

 아리스티드는 그후 베네수엘라와 프랑스 도미니카등지를 떠돌며 유엔과 미주기구(OAS)에 호소, 아이티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끌어냈다. 최근 워싱턴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권토중래를 꿈꾸어온 그는 마침내 아이티민중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53년 아이티 남단 포르살뤼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영국과 캐나다등지에서 수학한 해방신학자 출신. 82년 사제서품을 받은후 빈민가에서 복음활동를 펴온 그는 독재자 뒤발리에정권에 반대하는 반정부설교로 세차례나 암살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쿠데타를 성공한 뒤 폭정을 일삼아온 군부실세 라울 세드라스장군과 그의 대리인 에밀 조나생현대통령은 이제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김상우기자】

◎아이티는 어떤나라인가/인구 600만·1인소득 120불… 정정불안 거듭

 국토면적 2만㎢,(남한의 약 5분의 1) 국민 1인당 연평균소득이 1백20달러(9만6천원)밖에 안되는 최빈국이다. 6백만 인구의 90% 이상이 문맹 흑인이며 설탕 커피 목화를 원시적으로 경작하는 것 외엔 이렇다 할 산업이 거의 없다.

 1백7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노예혁명으로 1804년 지구상 최초의 흑인독립국을 건설했으나 그 뒤 순수혈통의 흑인과 백인혼혈인 물라토간의 권력 다툼으로 쿠데타와 무정부상태가 계속됐다. 미국은 1915∼1934년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아이티를 점령해 군정을 실시한 바 있다. 미군정 이후로도 아이티의 혼란은 수습되지 않았으며 그중에서도 지난 86년 민중봉기로 끝장난 뒤발리에 부자의 29년에 걸친 세습독재는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현재 아이티군부는 이 나라 부의 절반이상을 독식하고 있는 상층 1%의 엘리트층과 결탁, 마약과 각종 금수품목을 거래하거나 국제사회의 원조물품을 빼돌려 돈을 긁어모았으며 반대자는 주저없이 처형했다.

 아이티의 경제는 국제사회의 제재에 부닥쳐 현재 거의 멈춘 상태이고 국가기능도 마비됐다. 환경 파괴로 식량 생산이 급감, 국제사회의 원조가 끊기면 굶어죽을 지경이다.【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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