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 사이 눈에 띄는 사회현상 중의 하나는 국민학교 동창회 열기다. 특히 40대 50대 중년들 사이에 부는 동창회 바람은 더욱 요란하다.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나이, 사회적·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한편 쓸쓸해 지기도 하는 나이가 50대 전후인데, 그런 정서에 딱 들어 맞는 것이 국민학교 친구들과 흉허물없이 어울리는 일일 것이다. 그 나이의 남자와 여자들이 서로 이름을 부르며 반말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년의 틀을 깨는 자극이 된다. 『박철수, 옛날에 그렇게 짓궂더니 여전하네』라고 여자동창들이 말할 때 박철수씨는 기분 나쁘지 않고, 『김영숙, 옛날에 공부 잘하더니 이젠 그냥 아줌마가 됐구나』라고 남자동창들이 말할 때 김영숙씨도 기분 나쁘지 않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동심으로 돌아가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동창회는 대개 식사모임이지만, 기분이 오르면 2차 3차로 노래방이나 술집에도 간다. 남자들에 비해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여자들은 수십년만에 자기이름을 불러주는 남자동창들을 만나는 것이 큰 기분전환이 되어 2차 3차도 재미있게 참여하곤 한다. 『지난 동창회에는 남자들이 몇명밖에 안왔는데, 많은 여자동창들을 2차 3차로 안내하느라고 혼났다』고 말하는 남자들도 있다.
남녀가 비교적 흉허물없이 사귀는 지역의 국교 동창회는 서로 얘, 쟤 하면서 요란하고 시끄럽다. 지방의 국교동창회는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열리는 경우가 많은데, 어디서 열리든간에 출석률이 낮을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어떤 동창회는 비품으로 가라오케를 갖고 있을 정도이고, 매달 한번 모일 뿐 아니라 봄 가을 야유회도 간다. 모교에 장학금을 모아 보내는 모임도 많다. 같은 학년끼리 모이는 동창회가 아니라 같은 반끼리 반창회를 여는 극성파도 있다.
여러번 모이면서 「남녀관계」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어떤 지방국교 동창회는 사별·이혼으로 혼자된 동창들이 4쌍이나 결혼에 이르러 화제가 되고 있다. 남자들은 대개 재혼할 때 자기보다 나이가 아래인 「젊은 여자」를 원하지만, 어린 날의 기억이 남아있는 국교동창일 때는 나이가 문제가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51세인 남자가 51세인 여자와 즐겁게 결혼하는 보기드문 일이 국교동창들 사이에는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잘 진행돼가는 국교동창회들은 옆에서 보기에도 재미있다. 『마누라가 국교동창회에 얼마나 열심히 나가는지 질투가 날 지경이다. 나도 몇번 야유회에 참가했었는데, 초로의 남녀동창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흉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이북에서 국민학교를 나왔는데, 내가 좋아하던 여학생은 어찌 되었을까 새삼 고향이 그리웠다』고 한 남자는 말했다. 왜 국교 동창회가 인기인지 그의 말속에 대답이 있었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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