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되면 가로등 모두꺼 어둠의 도시로/주민들 서구영화 등 통해 바깥세계 눈떠 김일성 사후 북한내 권력승계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9월19일자 최신 호에서 수잔 로렌스기자의 방북기를 실었다. 다음은 기사의 요지.
공식적인 애도기간은 지났지만 아직도 김일성의 동상과 혁명사적지가 있는 곳에는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애도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거대한 김일성 동상이 서있는 평양 만수대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하루종일 추도곡이 방송되고 있다. 애도인파중에는 김의 사망당시 국외에 있었던 주민들도 있다. 그들은 의무적으로 이곳을 참배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김일성의 「만수무강」을 빌던 슬로건들이 이제는 「영생불멸」을 비는 것들로 바뀌었다.
끊이지 않는 애도행렬, 악화일로의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 속의 북한주민들의 표정에는 그렇게 침울한 기색이 없다. 1백70나 되는 주체탑 주위의 분수대에서는 어린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있고 평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대동강변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즐기는 주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동강변의 수상식당에는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김일성의 장례식 이후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단 한차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방세계에서는 이를 두고 북한내 권력다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김일성에 대한 기억을 서둘러 지우려 하지는 않지만 김정일이 권력승계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평양 만수대 예술극장 정원에 마련된 석판에는 김일성 부자의 업적을 찬양하는 문구와 함께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강조하는 김일성의 시구가 새겨져 있다. 또한 평양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극단원들이 현재 김부자를 「우리의 태양과 별」로 찬양하는 「대중체조 발표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앞으로 장기간 절대권력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우상화보다 북한경제의 회생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경제의 어려움은 사회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자동차의 수가 많지 않고 기름을 아끼기 위해 일요일에는 고위관리와 외교관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승용차 운행을 통제하고 있다. 또한 밤이 되면 전력을 아끼기 위해 가로등을 모두 꺼버려 평양은 어둠의 도시가 된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김일성이 만들어 놓은 「고립된 왕국」은 이제 막 세계와의 융화를 위한 첫 발을 내디디려 하고 있다. 최근 평양에서 열린 북미전문가회의에서는 양국간의 오랜 정치적 대립을 청산하고 워싱턴과 평양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북한 주민들의 바깥세계에 대한 인식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당국의 철저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민들은 라디오를 통해 영국의 BBC방송, 중국 또는 일본에서 송신하는 한국어방송, 그리고 몰래 한국방송도 청취하면서 다른 세계와 접하고 있다. 동구 공산권 국가들이 몰락한 후 외국영화의 수입도 다양해져 북한 주민들은 이제 사회주의를 찬양한 영화 일변도에서 벗어나 주로 태국과 말레이시아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수입한 영화를 즐기고 있다. 그중에는 「러브 스토리」 「메리 포핀스」등과 같은 서구영화의 고전들도 들어있다.
해외교포들은 다른 사고방식을 친척들에게 전해준다. 평양의 44층짜리 고려호텔등 관광호텔을 방문하는 북한인들은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이란인 여성의 모습이 보이고 진바지를 입은 시리아 남학생은 북한 여점원에게 손으로 키스를 보낸다. 부유한 북한 엘리트들은 마일드세븐이나 던힐 담배를 피우며 칵테일을 들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북한주민들은 한미 양군이 38선에 배치되어 있는 한 막대한 재원을 방위비에 투입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방비를 민간경제개발로 전환하는 유일한 길은 통일을 이룩함으로써 한국으로부터 오는 위협을 없애는 것이라고 북한 사람들은 보고 있다.【정리=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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