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북한문제와 한미관계/박상섭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한국논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북한문제와 한미관계/박상섭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한국논단)

입력
1994.09.15 00:00
0 0

 최근 북한핵을 둘러싼 일련의 문제들을 놓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외무장관의 급거 방미를 통해 한미공조가 공식적으로는 재확인되었으나 한미 양측은 여전히 무엇인가 찜찜한 듯한 태도를 완전히 거둘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경수로원자력발전소 지원의 주체, 미국의 대북한수교의 방식과 속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문제등을 둘러싼 양국 정부의 입장은 원칙적인 화합이 강조되지만 강조 자체가 의견 불일치에 대한 다른 방식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미국은 한국정부가 북미간 관계진전에 대해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아가 불필요할 정도로 견제한다고 불쾌히 여기고 있고 이에 반해 한국은 미국이 한국의 이익을 무시한채 북한과의 교섭을 마무리 지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을 짙게 갖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미묘한 긴장은 한미간에 국한되지 않고 국내에서 언론과 정부 사이의 긴장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언론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는 일반여론도 이에 가세하여 북한문제를 둘러싼 대미외교에서 정부가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는 듯이 보인다. 정작 대결의 상대인 북한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잘못하면 집안싸움으로 번지는 별로 반갑지 않은 형국이 전개되는 듯하여 전혀 유쾌하지 않다.

 한미간 뿐 아니라 어떤 나라들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상반될 때 마찰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교섭과 타협을 통해 해소되는한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해소될 수 있는 마찰이 일단 언론을 통해 증폭되고 다시 일반여론에 의해 가세될 뿐 아니라 나아가 정쟁의 대상으로까지 확산된다면 이는 정말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우려는 아직은 단순히 기우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여겨질 만큼 특별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그러한 가능성을 전혀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과거 미국의 대한정책에 대한 우리 정부나 국민들의 기대가 미국 자신의 판단기준은 무시한 채 우리 나름대로의 희망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번의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미국이 우리에 대해 특별한 대우를 해주기를 바라왔다. 이 점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다. 미국이 우리를 각별히 생각해서가 아니라 냉전상황에서의 대공산권정책과 관련하여 우리의 독특한 위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든 그동안 상당한 도움을 받아온 입장에서 고마움을 표시하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미국인식이 어찌 보면 좀 타산적이고 냉정한 듯이 보일지 모르나 오히려 그러한 태도가 미국과의 불필요한 마찰과 갈등을 줄이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그러한 태도의 견지가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점을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미국과 우리의 대북정책의 목표가 서로 다른데 맞춰져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출발했다면 앞서 지적한 한미간의 미묘한 마찰이나 언론에 의해 실패로 지적된 우리의 외교정책은 얼마든지 회피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이 대단히 가까운 사이지만 당장에는 비슷하게 보이는 외교목표를 갖는다고 해도 그것이 설정되는 수준이 다른 한에서 사태의 진전에 따라 의견의 불일치가 언젠가는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의 외교팀이 이 점을 몰랐을 까닭이 없는데 뒤늦게 이 점이 새삼스럽게 부각된다는 점이 오히려 이상스럽다. 여하튼간에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정되는 의견차를 좁혀 단합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시급하고 이 점은 한미당국의 외교책임자들에 의해 추진될 일이다. 어떤 주어진 현안해결에 비용이 드는 일이라면 그 비용을 부담하는 쪽의 의견이 존중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경수로지원의 형식이나 명칭에 관련된 문제는 원칙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북한의 정확한 의도에 대한 판단의 양국간 차이 때문에 정책방안이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면 보다 설득력있는 주장을 제시하는 쪽의 의견이 존중될 것이다. 일단 내려진 결정은 따르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계산하여 대비하는 기계적 작업이 따르면 될 것이다.

 어차피 미국은 자국의 계산에 따라 자신에 유리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이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할 이유도 없고 또한 고집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도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미국이 중요한 우방이기는 하지만 역시 외국인 한에는 계산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조는 어차피 서로 의견을 달리 할 가능성을 전제로 그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이 아닌가.

 미국의 의도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혹시나 미국의 입장을 너무 잘 이해하는 나머지 미리 알아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해준다고 해서 공조가 더 잘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는 점을 노파심에서 강조하고 싶다. 서로 돕자는 뜻의 공조는 어차피 서로 주고 받을 것이 있을 때 잘 되는 것이다. 미리 상대편의 요청사항을 들어주어 상대가 우리에 대해 아무런 아쉬울 것이 없다면 우리측에서 아쉬운 협조는 어떻게 얻어낼 수 있겠는가? 무근거한 기대가 아니라 명백히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있을 때 성숙된 한미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최근의 사태를 통해 절실히 배울 수 있었다면 앞으로의 한미관계는 더욱 바람직하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