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이 흑인동료 범인오인 총격… 인종문제 “시끌” 미국 대도시의 경찰은 때때로 그 자체가 문제집단이다. 알 카포네의 전성기때 마피아와 내통하던 부패경찰의 이미지는 지금도 일각에서는 남아 있다. 경관들은 가끔 「리셀 웨폰」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연상시키듯 매우 공격적이다.
뉴욕의 지하철경찰들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범죄의 온상으로 악명높은 뉴욕 지하철이 무대이고 보면 당연하달 수 있다. 데스먼드 로빈슨경관은 그 중에서도 영화 「리셀 웨폰」의 주인공에 견줄 만한 적극적인 경관이었다. 다만 그는 흑인이었다. 경찰업무를 공격적으로 해치우는 타입이었던 그는 거칠고 위험한 분야중 하나로 꼽히는 지하철강도 전담반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업무성적은 다른 동료들보다 뛰어났고 지난 연초에는 승진도 했다.
그런 로빈슨경관은 지난달 21일 저녁 이래 지금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기묘한 총격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그는 맨해튼 한복판의 저녁 퇴근시간 지하철역에서 사복차림으로 잠복근무중 백인경관이 발사한 총탄에 중상을 입고 누워 있다. 피터 델 데비오라는 그 백인경관은 당시 일을 마치고 평상복차림으로 지하철로 퇴근을 하다 사복차림의 로빈슨경관을 범인으로 오인, 총격을 가하게 됐다. 델 데비오 역시 공격적인 근무스타일로 유명한 경관이었다.
사건당일 뉴욕의 주요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경관들끼리의 오인총격사건이라는 사실자체만으로도 큰 기사였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서 백인경관에 의한 흑인경관의 피격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인종문제로 비화되면서 사건은 더 커져 버렸다.
지난 8월 21일 하오7시10분 퇴근인파로 한창 붐비던 렉싱턴 애비뉴 56가의 지하철역 구내. 이 지역은 맨해튼에서도 번화가에 속한다. 당시 로빈슨경관은 다른 정복경관에 쫓기던 10대소년 2명중 한명이 전동차안으로 도망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권총을 뽑아들었다. 소년은 옷속에 엽총을 감추고 있었고 그는 얼떨결에 이 엽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엽총은 떨어지는 충격으로 총탄을 격발시켰고 이때 전동차를 타고 퇴근길에 있던 델 데비오경관은 반사적으로 권총을 빼들었다. 그는 때마침 전동차로 뛰어드는 한 흑인을 보고 그를 향해 5발의 총격을 잇달아 가했다. 이중 4발은 이 흑인의 폐와 간등에 치명상을 입히면서 그를 쓰러뜨렸다. 이 흑인은 바로 도망가는 10대를 쫓으려던 로빈슨경관이었다. 총을 쏘던 델 데비오도 처음 10대를 쫓던 정복경관이 발사한 총탄에 맞았다. 그러나 상처는 경상이었다. 서로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경관들끼리 주고 받은 이 총격전은 불과 15초사이의 일이었다.
여기서 뉴욕의 매스컴들이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진 것은 백인경관 델 데비오의 총격행태였다. 그는 첫 두발로 로빈슨을 쓰러뜨린 후에도 쓰러진 로빈슨의 등에 두발을 더 맞혔다. 총을 가진 흑인이 동료경관일 수 있다는 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게 이 사건에 담긴 인종문제의 초점이었다. 사건 3일뒤 의식을 회복한 로빈슨은 자초지종을 들은 뒤 자신을 쏜 델 데비오를 병실로 불러 아무 걱정말라고 오히려 위로했고 델 데비오는 어떤 변명도 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연발하며 울었다.
그러나 로빈슨의 가족들은 뉴욕시경찰당국의 경위조사가 미온적이라고 비난하고나서 미 법무부는 지난 6일 재조사에 들어갔다.
같은 날 이번에는 부패혐의를 받은 두경관이 불과 몇시간 간격으로 자살한 시체로 발견돼 뉴욕경찰은 이래저래 곤경에 처해있다.【뉴욕=조재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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