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호칭을 싸고 또 파문이 일고 있다. 정부가 서울서 열릴 국제환경회의준비문서에 일본해라는 표기를 용인했다가 비판여론이 비등하자 뒤늦게 취소했다는 것이다. 당초 정부는 일본해의 표기는 단 한곳뿐이며 한일간 동해명칭을 둘러싼 논의에 아무 영향을 안줄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보도됐었다. 경위야 어떻든 이런 혼선은 동해의 역사성과 국민정서를 짓밟는 처사다. 우리나라가 세계지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신라로 표기된 아랍의 알 이드리시지도(1154)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한국은 초기엔 섬으로 나타나면서 국명도 코리 코리아 코레 카오리 코라이 코레아 차오센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됐다. 1595년 프랑스 메르카토르지도나 벨기에 오르텔리우스지도엔 한국이 섬이다. 바다 명칭은 한국해(MER DE COREE)가 압도적이었다. 영국의 몰(1750) 프랑스의 보공디(1751) 벨렝(1748) 보웬(1750,1780)등 주요지도가 한국해로 적었다.
샤틀렝의 아시아도(1680) 드페르지도(1703) 하시우스지도(1744)는 동해로 표기했다. 프랑스 드릴지도(1705) 네덜란드 엘위 지도(1792)는 동해 혹은 한국해로 적었다. 이처럼 동해(MER ORIENTALE)나 한국해(MER DE COREE)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역사적 명칭이다. 일본해로 나타난 것은 19세기 이후이다. 우리가 쇄국정책을 쓰고 대외교섭이 전무할 때 세계로 뻗은 일본이 영향력을 행사해 일본해란 이름을 선전한 것 같다. 결국 국력의 쇠미탓이었다. 1988년 동북아국제회의에서 일본해라는 이름을 처음 비판한 경북대 김영호교수는 16∼18세기 유럽지도의 7할이 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했다면서 일본해를 객관적인 이름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기자는 동해를 한국해라고 명기한 이 무렵의 프랑스 영국 러시아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포르투갈등 고색창연한 유럽고지도를 수없이 보아왔다. 동해를 우리것으로 복원하자는 작업은 외국어대 서정철교수, 해양자료센터 한상복씨, 서지연구가 백성현씨등의 끈질긴 자료수집과 연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가 이렇게 역사적 근거가 뚜렷한 한국해나 동해를 되찾지 못할망정 일본해를 용인한다면 지리의「창씨개명」처럼 치욕스런 일이다. 영·불간의 해협을 영국에서는 채널(CHANNEL), 프랑스에선 망슈(MANCHE), 일본에선 이기리시 가이쿄(해협), 우리는 영불해협이라고 부른다. 고집스럽게 자기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정부의 한심스런 일본해 용인 파문을 보면서 이런 노래를 떠올린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김민기 작사, 송창식 작곡·노래 「내나라 내겨레」). 동해는 모험과 도전의 상징이다. 국토의 최동단에는 독도가 있다. 동해를 지키자.<여론독자부장>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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