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입장/“경수로선정 등 쉽지는 않을것”/대한공조 언약후 미태도 주시 북미간 연락사무소설치와 대북경수로지원등을 논의할 10일의 전문가회의를 앞두고 정부는 바짝 신경을 세우고 있다. 이와함께 정부는 한승주외무장관의 방미를 통해 재확인한 한미공조를 바탕으로 전문가회의에서 한방울의 누수가 없도록 대비하는 모습이다. 정부의 태도는 이 회의를 거쳐 북미 3단계고위급회담으로 가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기인한다.
북한은 북미간 연락사무소 설치와 관련, 평양에서 개최될 전문가회의에 참석할 미측 대표단장(국무부 부과장급)을 정책결정권이 있는 직급으로 상향조정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미측에 의해 거부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전문가회의의 역할및 성격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북한은 미국의 대표단이 평양에 오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 연락사무소 설치의 대략적인 일정까지 보장받으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외무장관회담등을 통해 북미간 연락사무소 설치와 남북관계의 진전을 최소한 병행추진하겠다는 미국의 언약을 받아낸 정부로서는 이러한 북한의 요구에 강력히 맞설 자세이다. 따라서 북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평양 전문가회의에서는 연락사무소가 설치될 경우 사무소건물의 임대방식, 통신보안시설의 설치가능성등 실무수준의 논의만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베를린에서 열리게 된 핵문제관련 전문가회의는 이보다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베를린 전문가회의는 양측에서 각각 12명의 대표단이 참석해 대북경수로지원문제, 사용후 핵연료봉(폐연료봉)의 영구처리문제, 대체에너지제공문제순으로 3차례의 회의가 열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첫번째 회의에서 다루어질 경수로지원문제에서 미국은 이번 한미접촉에서도 확인된대로 한국형경수로를 집중적으로 설명하려 할 것이고 북한은 일단 러시아형을 고집하면서 미국의 제안을 일축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회의에서 경수로기술에 관한 양측의 의견교환은 있을 수 있으나 경수로형이 최종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정부는 보고있다.
폐연료봉의 처리문제에 관해서는 한미간에 「제3국이전」을 추진한다는 원칙만 확인된 상태일뿐 구체적인 전략은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대해 북한은 미래의 핵카드를 확보키 위해 건식보관이라는 기술적 방법을 내세우며 어떻게든 폐연료봉을 계속 끌어안고 있으려 할 것이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대체에너지의 규모 및 지원방법을 논의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대체에너지 제공은 이것이 보상차원에서 이루어진다해도 경수로지원과 마찬가지로 관련국의 재정분담을 요구하는 만큼 결국은 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냐가 쟁점이 될 것이다. 미국이 구체적인 현안의 타결은 북미 3단계회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전문가회의는 필요할 경우 보조적인 차원에서 수시로 개최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한계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이유로 전문가회의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지만 이 회의에서 드러날 북한의 태도가 향후 협상에 대한 북한의 성의를 가늠하는 판단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태성기자】
◎미국의 입장/한국의식 베를린쪽에 더무게/“연락사무소 실무문제만 논의”
미국과 북한이 10일 평양과 베를린에서 관계개선문제와 북한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회의를 각각 시작한다. 이번 회담은 지난달 12일 북미 3단계회담에서 합의한 바에 따른 것으로 양국은 이번 회의결과를 놓고 오는 23일 제네바에서 재개될 3단계 2차회담에서 계속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정부는 북미 전문가회의의 의미를 애써 평가절하하려 하고있다. 한국정부가 처한 정치적 곤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장관의 워싱턴방문시 대북관계개선에서 적절한 속도조절을 약속한 바 있다. 워싱턴의 일관된 입장은 북한이 약속한 핵동결계획을 실천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에만 북미 관계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배경에서 미국은 북미관계개선을 논의할 평양회담보다 핵문제를 토의할 베를린회담에 더 무게를 싣고있다.
전문가회의의 대표단 구성과정에서도 핵문제 중시태도가 나타나 있다. 미국은 평양회의에 국무부 한국과의 린 터크 부과장을 대표로하는 5명의 대표단을 보낸 대신 베를린에는 게리 세이무어 핵비확산담당부국장이 이끄는 12명의 대표단을 파견했다. 대표단장의 이력에서 보듯이 미국측 협상팀은 실무적 색채가 강하다. 린 터크 부과장은 2년전 주한 미대사관에서 근무한 한국문제전문가이고 세이무어부국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핵전문가이다.
평양에 들어간 대표단은 향후 연락대표부를 교환하게 되는 경우에 대비해 부지물색과 통신망확보등 기술적인 문제만을 논의하겠다는 것이 공식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한국을 의식한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수교문제를 다루기 위해 미국대표단이 6·25이후 처음으로 평양에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평양회의는 현장답사의 성격이 짙기 때문에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베를린회의는 핵문제에 관한 관련국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꼬여있어 한층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소재 북한이익대표부에서 열릴 첫날회담에서는 경수로 지원국선정및 재원조달등에 따르는 문제가 주로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12일 미국측 공관에서 속개될 회담에서는 녕변 5㎿ 원자로에서 꺼낸 폐연료봉 처리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 대한 대체에너지 제공문제와 북한이 요구하는 원자로 가동중단에 따르는 보상문제도 대화테이블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들 3개분야의 의제에는 남북한과 미국등 관련국들의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성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우선 경수로지원과 관련해 한국정부는 한국형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그것도 북한이 수용불가입장을 밝힌 특별사찰과 연계시킨다는게 공식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특별사찰의 명칭과 형식에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오는 13일까지 계속될 이번 회의에서는 최근 한미간의 고위 정책조정과정을 거친 뒤 처음으로 북한을 대하는 것이어서 미국의 태도변화가 주목된다.【워싱턴=정진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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