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론·실무·인품 겸비/“국민에 재판받는 자세로 재판을”실천/57년 고시 최연소수석 본보 「올해의 인물」 뽑혀 제2기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김용준전대법관(56)을 말할 때 지체 부자유자란 사실을 앞세우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4부 요인」의 하나인 헌법기관 수장에 오르게 된 탁월한 법관의 진면목을 가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장애를 극복한 인물이고 그 점이 언제나 두드러질 수 밖에 없다.
김전대법관의 지명 소식에 법조계 인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탁월한 법이론과 실무능력, 거기에 무엇보다 돋보이는 인품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8일 상오 그는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자택에서 『임명된 것도 아닌데 벌써 무슨 인터뷰냐. 아무말도 안하겠다』면서도 활짝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20여년간 새벽 수영으로 다진 다부진 체격과 훤한 이마, 걸걸한 목소리, 안경너머의 다정한 눈빛, 쾌활하고 소탈한 말투등 「그늘」은 커녕 한치의 모난 구석이 없다.
그는 서울고 2학년때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법대에 들어가 3학년때인 57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19세로 최연소 수석합격, 한국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뽑혔다. 이때 『법관으로 강자의 횡포로부터 보다 많은 약자들을 보호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60년 법관이 된 뒤 63년 서울형사지법 배석판사시절 일간지에 박정희최고회의의장의 대통령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기고했다가 구속된 송요찬전육참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 「소신 법관」의 면모를 과시했다.
28년간의 법관 생활을 거쳐 88년 최초의 「소아마비 대법관」에 오르기까지 그는 『법은 물이 흐르듯 해야 한다. 국민들로부터 재판받는 자세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철학을 실천해 왔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지난 3월 「생수 시판금지는 위법」이라고 선언한 판결이다. 그는 이 판결을 위해 1년여 법률검토와 함께 생수업자·소비자들을 직접 만나 「국민의 소리」를 들었다.
지난 7월 퇴임하면서 그는 후배 법관들에게 『법과 현실사이의 괴리를 줄여가는 것이 법원이 할 일』이라며 『법조문에 얽매여 현실을 무시하지 말고 구체적 타당성에 맞게 판결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변호사 개업을 준비하던 그가 헌법재판소장에 발탁된 것은 이 당부가 「김용준 헌재」에서 구현될 것을 기대하는 여망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서울태생인 그는 세살때 심한 소아마비를 앓았으나 보조장구나 지팡이 없이도 1시간 이상 걸어 다닌다. 재판연구관들을 부르지 않고 직접 방으로 찾아 가는 것으로 유명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중학진학때 아픔을 겪기도 했던 그는 66년 소아마비 친구들과 함께 한국소아마비협회를 창설, 지체부자유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는 일에도 헌신해 왔다.
그는 헌재 소장 지명소식에도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본격적으로 해 볼 생각이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이희정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