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과 90년 2년에 걸쳐 질풍처럼 이뤄진 독일 통일은 분단의 한국에는 선망과 희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통일이 된지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통일의 불협화음이 우리에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극심한 실업과 경제의 정체,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 동·서독 국민간의 반목과 질시 등은 쉽게 해결될 사안으로 뵈지 않는다. 최근 출간된 「헤이 오씨, 안녕 베씨」(푸른나무 간)는 그런 독일의 상황을 일목요연히 보여준다.
『오씨(OSSI·서독사람이 동독사람을 경멸해서 쓰는 말)들을 다 「저쪽」으로 쫓아내고 10 아니 20 장벽을 다시 쌓은 다음 넘어오려는 놈이 있으면 즉시 쏴 죽이고 유태인에게 했듯이 가스실로 보내야 한다』 『주둥아리만 큰 베씨(WESSI·동독사람이 서독사람을 경멸해서 쓰는 말)들이 우리를 바보 천치로 취급하는 것이 영 마음에 안든다. 누구는 장장 40년 동안을 독재밑에서 시달리고 싶어서 그랬는가. 그렇다 해도 옛 동독은 실업자가 하나도 없었다』
표현이 험악한 것은 독일 중·고등학생들의 솔직한 소감이기 때문이다. 책은 중학 3년생에서 대학 1학년까지 양독 학생 1천여명의 통일소감을 모은 것이다. 자연히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직설적이다. 그래서 오히려 독일의 실태파악이 여실해 보인다. 옛 동독의 주민들은 심각한 실업병에 생존의 위기를 느끼며 사회주의의 작은 장점이었던 사업장탁아소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그리워한다. 서독 주민들은 한층 심하다. 실업증가·세금인상·국내불경기 등이 죄다 오씨놈들 탓이다. 양독 국민은 「거드름 피우며 잘난척 해대는 서독놈」과 「게으르고 불평만 늘어놓는 동독놈들」이란 적대감 등으로 서로를 질시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사회 혼란의 중요 원인을 외국인에게 돌린다는 점이다. 그들은 『외국놈들 다 총살시켰으면! 』하고 똑같은 톤으로 외친다. 중학생에 이르는 젊은이들까지 히틀러 파쇼에 대한 회귀성을 갖고 있다는데 놀라울 뿐이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볼프 비어만(동독 출신의 시인)은 이같이 편협한 독일 젊은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무척 화를 낸다. 특히 소감을 쓴 학생 가운데 단 한명도 동독사람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이 지구상의 고통받는 다른 나라에 비해 행복에 겨운 것임을 알지 못한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볼프 비어만은 이 글들을 날카롭고 기지에 찬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통일을 체질적으로 거부하면서도 62%의 학생들이 통일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현실성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통일의 기쁨과 고통은 함께 해야 한다는 것, 점진적인 통일론이 한때 매국노처럼 보였지만 얼마나 중요했던가, 무엇보다도 「인간의 통일문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운 문제임을 명쾌히 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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