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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후계」 사전에도 나와있다”/김평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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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후계」 사전에도 나와있다”/김평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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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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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새시대 맞을 준비중/대사직 만족… 명령따를뿐” 한국일보문화1부 서사봉기자는 지난달 31일 헬싱키에서 김일성의 2남이자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주핀란드 북한대사 김평일의 근황을 집중취재했다. 이에 앞서 30일 핀란드의 전일간지기자 마르티 후타마키씨(자유기고가)는 서방기자로서는 처음으로 김평일과 인터뷰를 했다. 서기자가 촬영한 김의 동정과 후타마키씨의 인터뷰내용을 함께 싣는다.【편집자주】

 마르티 후타마키씨와의 인터뷰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복형인 김정일은 아직 국가권력을 승계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형은  이미 20여년 전에 아버지의 후계자로 선택됐고, 인민들은 그의 후계를 지지하고 있다. 또 형의 후계사실은 이미 우리 사전에도 나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애도기간」은 진정한 슬픔에 사로잡힌 인민대중의 끝없는 애도행렬이 이어져 끝나지 않고 있다. 대규모 회의를 통해 곧 국가권력을 승계하게 된다』

 ―북한의 새 지도자는 알코올중독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매우 한정적으로 술을 마실뿐이다. 이를테면 공식적인 파티등을 말할 수 있다. 나는 그가 술을 과음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이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것을 오히려 걱정하고 있다』(그의 손에는 캐멀담배가 타고 있었다)

 ―지난 봄 처음 부임한 후 왜 곧바로 귀국했었나. 부친이 위독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몇 가지 처리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었다』

 ―당시 북한의 정정은 불안했다는데. 혹시 김일성의 대남접근을 수용하지 않는 세력들이 있었는가.

 『북한정정은 불안하지 않았다. 우리의 정책결정체계는 인민들이 의견을 개진하면 어떤 것이든 지지되는 형태이다. 유감스럽게도 외부의 적들은 거의 매일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 이 잘못된 정보에 의하면 나는 이미 오스트리아로 망명한 사람이다. 이는 연방제로 통일을 하려는 우리의 정책수행을 방해하려는 시도이다. 어쨌든 나의 부친에 의해 선택되고 김정일동지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 남한에 의해 방해되는 것이 유감스럽다.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부친의 장례식에 조문하려는 인사들의 방북을 방해한 것은 남한이 우리에게 사과해야 할 일들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무엇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했는지 궁금하다. 1950년의 한국동란이 그 예이다.

 『당신은 전혀 잘못 알고 있다. 우리는 남한과 미국의 침공에 맞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15개국 연합군이 우리를 공격했다. 중국이 우리를 도와 참전한 후 38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미국과 북한은 핵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했다. 이것은 앞으로 북미관계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오랫동안 미국은 우리의 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양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카터전미국대통령이 당신들의 초청에 의해 방북한 것인가 아니면 미국대통령의 특사로 보내진 것인가.

 『그는 자신의 의지로 방북했다. 우리는 그를 우호적으로 맞았다. 그는 어린이와 젊은이, 공장의 노동자, 거리의 인민들, 또한 최고위급 지도자들과 만났다. 그는 북미간의 협상점을 찾을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일반인에게도 곧 국경을 개방할 것인가.

 『이미 여행은 가능하며 당연히 국경을 통과하는 여행은 모두 늘어날 것이다. 그것이 발전방향이고 그 점에 대해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개선될 것인가.

 『일본과의 관계는 일본이 우리를 꺼리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현재 중단상태이다. 그러나 민간 차원에서는 벌써 일본과 사업을 하고 있다』

 ―당신은 오랫동안 군에 있었고 젊은 나이에 고위직으로 빠르게 진급했다. 그 후 외교관과 대사로 불가리아에 갔다. 소련에 이어 공산체제 국가들이 잇달아 무너졌는데….

 『우리는 소련과 불가리아의 내부 발전에 대해 관여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불가리아는 새로운 체제로 생활수준을 개선시켰음에 틀림없다. 정치체제가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국민들의 복리가 어떤 경우이든 모든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현체제를 지속할 것인가.

 『우리는 인민의 자립과 창의성이라는 기조위에서 사회주의를 더 발전시키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북한의 경제상황은.

 『공업과 농업을 독립적이자 가능한 한 자급자족형태로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실제보다 평가절하된 풍요롭고 다양한 자원이 있다. 만일 우리의 작업이 위대한 수령에 이어 김정일동지의 안전한 지도력아래 어려움없이 계속될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풍요롭다』(김평일은 코카콜라 한 잔을 더 따른 후 캐멀담배에 불을 붙였다)

 ―당신은 외교관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군으로 돌아가길 원하는가.

 『나는 우리 정부가 내리는 명령에 충실하게 따를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 지금 나는 헬싱키대사에 만족한다』 (김평일은 시종 적절한 영어에, 가끔 러시아어를 섞어가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군인이라기보다는 외교관에 더 어울렸다)

 ―당신의 개인사에 관해 말해달라.

 『나는 8세 때 평양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우리가족이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애썼다』

 ―아버지가 최고 권력자가 되기 전에도 영향력이 있는 집안이었는가.

 『할아버지 김형직은 평범한 사람으로 일본과 싸웠고 투옥돼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32세의 젊은 나이로 숨졌다. 나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죽을 때 곁에 있었는가.

 『아버님 곁에서 임종을 보았다』

 ―북한 국민들이 보이고 있는 슬픔이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가짜 슬픔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아버님은 50여년동안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였고 그 기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세월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강제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감정이란 진실한 것이다. 인민들의 슬픔은 진짜가 틀림없다』<사진=본사 서사봉기자 글="핀란드 후타마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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