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지도 북 영화파악 기회/향후노선 가늠해볼 「작은창」/비동맹등 40여국서 작품 출품할듯 북한은 오는 26일부터 평양에서 제4회「비동맹 및 기타 발전도상 나라들의 영화축전」을 개최한다.
흔히 「평양영화제」라고 불리는 이 영화제는 87년이후 2∼3년마다 한번씩 30∼50개국의 작품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려왔다. 이번 대회에도 40개국 안팎의 작품들이 출품될 것으로 보이는데 김일성사후 북한 내부사정이 불투명한 시점에서 처음으로 북한이 국제행사를 주최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욱이 영화사업은 김정일의 「전공분야」로 현재까지도 연출, 연기등 실무적인 부분까지 직접 지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같은 행사와 북한영화의 제작동향이 향후 북한정권의 노선을 엿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김일성사후에만 8편의 영화를 개봉하는등 영화를 양산하고 있고 내용면에서도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북한에서 최고로 꼽히는 영화배우는 인민배우 오미란. 87년 평양영화제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도라지꽃」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도라지꽃」은 산간지방을 개척하여 낙원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 선동영화. 이 영화에서 순진한 처녀일꾼으로 등장했던 오미란은 최근 제작된 다부작 「민족과 운명」에서는 「남조선의 정치 매춘부」홍영자로 분장, 악녀역으로 변신하고 있다. 친북인사 최홍희의 생애를 그린 민족과 운명 6∼10부에 등장하는 홍영자는 실각한 한국의 국회의원의 딸로 박정희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미모의 여인. 『남한에서 권력을 지키려면 독사가 돼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홍영자는 군단장시절 최홍희를 감시하는 스파이임무를 맡는등 권력의 뒷무대에서 암약하며 온갖 권모술수를 부린다. 오미란의 배역이 산간개척사업의 히로인에서 남조선의 악녀로 변한 것은 90년대들어 북한영화 전반의 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총50부가 제작될 예정인 민족과 운명은 현재까지 16부가 완성됐는데 최덕신,윤이상, 최홍희, 이인모등 인사들의 생애를 통해 남한체제의 부패상을 왜곡,부각시키기 위해 김정일의 지시로 북한영화계가 총동원돼 91년 부터 제작이 시작됐다. 북한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점은 이 영화에서 비록 심하게 왜곡되기는 했지만 남측의 실상이 비교적 적나라한 장면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 북한영화는 자체체제홍보에 주력해 왔고 비판적인 시각에서라도 남측의 소재를 다루지는 않는 것이 상례였다.
북한영화를 연구해온 민족통일원 이우영책임연구원은 이같은 변화를 『김정일이 개방에 대비해 북한주민들에게 면역주사를 놓기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연구원은 이같은 북한영화의 변화가 김정일이 제한된 개방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임을 반증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유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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