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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에 밀리던 국산현악기/“소리좋다”제작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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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에 밀리던 국산현악기/“소리좋다”제작활발

입력
1994.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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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등 연주가들 호평속/유학파장인 「제작학교」설립도 이탈리아나 미국, 독일제에 밀려 빛을 못보던 국산 수제 현악기시장이 90년대 들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써 본 음악가들 사이에 「소리가 좋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수제 현악기 제작이 활발해졌다.

 한국바이올린제작가협회는 2일부터 4일까지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회원 작품전」을 가져 회원들이 만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활 등 50여점을 전시했다. 지난해 11월 첫 전시회를 열어 30여점을 선보였던 이 협회는 당시의 호응에 힘입어 올해는 전시일정도 당기고 출품악기수를 늘렸으며 전시회도 매년 열기로 했다.

 지난 2월에는 국내 최초로 바이올린제작학교도 탄생했다. 미국 시카고 바이올린제작학교 출신인 김성상씨(61·지휘자)가 자신의 제작실에 문을 연 이 바이올린 제작학교에는 현재 4명이 수업중이다.

 김씨는 바이올린 제작의 1세대로 75년부터 10년동안 시카고와 뉴욕에서 바이올린 제작을 배웠다. 그는 유학시절인 76년 「미국독립2백주년기념 국제 바이올린제작경연대회」에서 제작부문 금상, 소리부문 입상을 했던 실력파이다.

 『귀국해보니 바이올린 제작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었다. 86년에 1대 만들고는 손을 놓았다가 93년에야 1대를 만들었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올해는 2대를 만들었고 4대를 제작중이다. 학교까지 열었으니 이제는 제작에 열심히 매달려 볼 생각』이라고 말한다.

 국내 수제 바이올린이 등장한 것은 60년대로 외국 것을 뜯어보아 겉모양만 베낀 수준이었다. 『제대로 된 수제 현악기는 미국과 독일에서 유학한 제작자들이 80년대 국내에 정착하면서부터 나왔다』고 바이올린 제작가협회 박원순회장(52)은 설명한다.

 현재 수제 현악기를 만드는 사람은 50명 정도. 바이올린제작가협회에 소속된 회원은 30명이다. 이들이 매년 만드는 현악기는 50여점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국산현악기는 3백만원에서 1천만원대로 거래되어 5백만원에서 5천만원대에 이르는 외국현악기에 비하면 가격이 매우 낮다.

 스승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씨가 권해서 「김성상 바이올린」을 86년에 구입한 유진섭씨(23)는 이 바이올린으로 87년 한국일보 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90년 서울대입시에도 붙었다.

 그는 『당시 경쟁자들 가운데 국산악기를 쓴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 악기소리는 3천만원에서 5천만원 한다는 수입악기에 비해 손색이 없다. 왜 학생들이 고가의 외제품에 매달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1802년산 과다니니가 고장나서 박상현씨(25·이탈리아 유학중)가 만든 국산바이올린으로 5월 국립극장에서 독주곡을 연주한 정승영씨(48·KBS교향악단)는 『대형 무대에서도 소리가 좋았다. 나이든 사람들은 오히려 소리를 아는데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부모의 권유로 무조건 외제를 선호하는게 무척 안타깝다』고 덧붙인다.【서화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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