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후 퇴진 절반이상이 「U턴」/대부분 비리아닌 금융사고 책임자/“경륜활용 이득” “세대교체 역행” 찬반 「불명예제대」했던 금융계 거물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문민정부출범직후 금융권을 강타했던 사정태풍과 잇따른 대형 금융사고로 은행권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옷을 벗었다. 지난 1년반동안 임기중 중도하차했던 은행임원은 20명을 넘고 이중엔 은행장급만도 13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금융이 산업을 지배하던 시절, 천하에 부러울 것 없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불명예와 실직의 멍에를 뒤집어 쓴채 서서히 세간의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하지만 최근 퇴임거물들의 「컴백」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물론 고령과 건강, 주위이목 때문에 영구은퇴를 선언한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저런 연고로 관련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현업 복귀한 사람들이 이미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이들의 중도하차유형은 크게 개인적 비리로 사정바람에 휩쓸렸거나 금융사고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경우로 최근의 「재기파」들은 주로 후자에 속한다.
지난 5월 한국통신주식입찰가 조작사건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스스로 옷을 벗었던 허준전외환은행장은 한달후 대우증권회장으로 복귀했다.「물러난지 얼마나 됐다고…」라며 허전행장은 고사했지만 경기고 입학동기인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의 강한 설득으로 자리를 맡게 됐다는 후문이다. 허전행장과 동반하차 했던 이영우전외환은행상무도 지난 29일 계열사인 외환투자자문사장으로 「복권」됐다.
올초 장령자씨 사기사건으로 물러난 선우윤전동화은행장은 텐트제조업체인 (주)진웅의 부회장으로 활동중이다. 80년대말 수출입은행이사시절 선우전행장은 무명이던 진웅의 장래성을 인정, 과감한 금융지원을 해줘 세계적 텐트제조업체로 성장하는데 1등공로를 세웠고 진웅은 결국「보은의 자리」를 제공한 셈이다.
선우전행장과 동반퇴진했던 이재천전상무도 계열사인 동화리스부사장으로 복귀했다.
역시 장씨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옷을 벗었던 김영석전서울신탁은행장은 현재 서은리스 비상임이사. 은행측의 「전관예우」노력에도 불구, 격에 맞는 자리가 없어 계열사인 서은리스에 그저 이름만 걸어 놓았다. 김전행장과 함께 물러났던 한기선전상무는 법정관리중인 범양상선대표로 최근 취임했다. 작년말 임기만료직전 퇴진했던 정춘택전은행연합회장도 최근 김만제씨의 포철회장취임으로 공석이 된 고려경제연구소고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형금융사고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인사들의 잇단 「복권」과는 달리 사정바람을 탔던 거물들은 아직도 은거상태에 있다. 중도하차의 이유가 경영책임이나 관리소홀이 아닌 개인비리였던 탓에 1년반이 지난 지금도 이들의 운신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박기진전제일은행장은 최근 제일은행이 경영고문으로 추대했으나 「부담을 주기 싫다」며 고사했고 김준협전서울신탁은행장 이병선전보람은행장 안영모전동화은행장 이현기전상업은행회장등도 이젠 금융계를 영원히 떠난 것으로 보인다.
장기오전은행감독원부원장도 등산등으로 소일하고 있는 상태. 「정계진출을위해」라며 외환은행장을 사퇴했던 김재기씨는 한국종합유선방송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금융계에는 거물들의 복귀에 대해 『세대교체에 역행한다. 한번 물러났으면 그만이지 왜 금융권주변을 맴도는가』라는 비판론과 『물갈이식 세대교체는 옳지 않다. 당연히 복권돼야 할 사람들이고 그들의 능력과 경륜이 필요하다』는 찬성론이 교차하고 있다.【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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