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통증을 겪는 말기환자들이 「아편중독」에 걸릴까봐 진통제로 모르핀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는 기사(한국일보 1일자 17면)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서양인 의사나 간호사들은 한국인 환자들의 이런 태도를 이해 못한다고 한다. 말기의 통증이 매우 심한 병에 걸린 환자들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아픔과 싸워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어떻게 보내고 싶다는 희망도 있고 그 안에 정리할 것도 있겠지만, 일단 말기의 통증이 시작되면 하루하루 고통과 싸우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병에 따라서는 고통이 너무 심하여 죽음이 오히려 안식이라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미국등 서양의 의료계에서는 이런 말기환자들의 통증을 덜어 주어 삶의 질을 어떤 수준으로 유지시켜 주려고 노력하고 있고 환자들도 적극적으로 말기의 생을 설계하고 투병하는 것이 보통이다. 의사나 환자나 병의 치료뿐 아니라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악조건속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려는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말기환자들이 극심한 통증속에서도 모르핀 사용을 꺼리는 것은 어려서부터 아편쟁이의 패가망신을 경계하는 강력한 교육을 받아왔을 뿐 아니라 현실적 필요성보다 명분에 좌우되기 쉬운 특성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통증을 참는게 낫지 여기서 또 아편쟁이까지 되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결벽증, 인고를 미덕으로 아는 문화의 영향도 클 것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병의 진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는 우리 의료계의 풍토도 이유가 될 것이다. 『당신의 병세는 나빠지고 있다. 지금부터 매우 견디기 힘든 통증이 올 것이다. 일단 통증이 시작되면 다른 생활을 갖기 어렵다. 모르핀은 진통 효과가 높다. 만일 병세가 호전되어 모르핀 사용량을 줄여 나가면 금단증세없이 약을 끊을 수 있으므로 중독을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정도의 설명을 해 준다면 모르핀에 대한 환자들의 극단적인 거부감은 줄어들 것이다.
말기 암을 치료하러 한국과 미국의 병원을 오갔던 한 환자가 한국의 의사들에 대해서 가장 불만스러워 하는 점은 「병세와 치료에 대한 설명부족」이었다. 누구에게든 절망적인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우리의 풍토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들이 환자가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아서 자신의 병에 대해 이해·정보부족의 상태에 있게 된다고 그는 불평했다.
말기 환자들의 모르핀사용 거부는 「이해·정보부족」의 한 좋은 예일 수도 있다. 투병생활에서도 삶의 질이 중요하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편쟁이가 될까봐 모르핀을 거부하며 통증속에 죽어가는, 훌륭하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한 환자들에게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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