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모델 개발 “고품질 냉장고” 각광/올해 이·EU대상 6만대 판매계획/공장인근 나폴리항… 아주·중동진출기지 역할 밀라노와 나폴리를 잇는 A1 고속도로를 달리다 나폴리 북쪽 50 지점에서 피냐타로 마조레시로 빠져 4쯤 더 가면 지루하게 계속되는 지중해풍 농촌풍경 속에 돌연 GOLDSTAR(금성)라는 낯익은 간판과 만난다.
「GSED(금성 내수가전)」가 공식 명칭인 금성사의 나폴리 냉장고공장(법인장 최상룡)은 이탈리아서도 손꼽히게 가난한 지역인 캄파냐주의 시골 공단에 자리잡고 있다. 주요 산업이 밀집한 밀라노등 북부지역을 두고 금성은 왜 하필 남부의 가난한 곳에 현지 공장을 세웠을까.
이에 대해 최법인장의 대답은 명쾌하다. 지리적 위치와 현지정부의 지원, 임금수준등이 금성사의 국제화 전략과 잘 맞아떨어지는 명당이라는 설명이다.
부피가 큰 가전품인 냉장고는 공장 입지를 선정할 때 물류여건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마조레시는 인구 10만남짓의 작은 도시지만 이탈리아의 중심 도로인 A1 고속도로가 통과해 나폴리 살레르노등 큰 항구와의 거리가 수십이내다. GSED는 설립 당초부터 이탈리아의 내수시장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전역과 동구, 서부 CIS, 모로코등 아프리카의 지중해연안국, 중동, 나아가 남미지역의 수출을 뒷받침한다는 목표아래 세워진 공장. 단순히 EU의 무역장벽을 회피한다는 우회수출 의도를 벗어나 금성사의 세계 전략상 전진 생산기지라는 거창한 임무가 주어졌으므로 지중해의 중앙인 나폴리항을 배후에 둔 입지때문에 일단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정부 적극 지원
또 남부 낙후지를 개발하려는 이탈리아 정부의 지원 노력에 힘입어 투자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캄파냐주는 실업률이 30%를 웃돌아 EU집행위원회가 마피아의 고향 시칠리와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후진지역으로 꼽는 곳. 이곳에다 한국의 금성이 현지 공장을 짓겠다고 나섰으니 이탈리아정부는 손을 들어 환영했고 파격적 지원이 주어졌다. 토지구입액을 제외한 투자액의 40%를 양여금으로 지원하고 총 투자액의 30%를 연리 5%로 10년간 융자하며 영업 시작후 10년간 법인세 지방세를 전면 면제해 주고 있다.
게다가 임금수준은 국내보다 도리어 낮을 정도다. 현재 고졸 생산근로자의 초임은 보너스를 포함해 연봉이 2천2백만리라(1천1백만원)정도. 모두 1백50명인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3천만리라내외로 이중 연금이나 산재보험조인 30%를 제하면 실수령액은 70%정도다. 근로자가운데 20%가 산별노조에 가입했지만 좌익의 퇴조등 노조가 약화되는 추세여서 올해 합의한 임금인상률은 겨우 1%다.
금성사는 총2천7백만달러를 투자해 연산 20만대의 냉장고 생산설비를 완성하고 지난 92년9월부터 공장가동을 시작했다.
GSED는 국내 기업의 다른 해외 현지법인과 비교해 상당히 독특한 기업운영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유럽뿐 아니라 남미와 중동, 아프리카 시장까지 노리는 생산거점의 성격이 강하므로 유럽지역에 일반화된 직접냉각 방식과는 차별화된 간접냉각식 제품을 내세워 새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도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지역에선 냉장고가 독자적인 가전제품으로 팔리지 않고 조립식 부엌(시스템 키친)의 일부로 여겨져 마치 주방용품처럼 취급된다. 냉장고의 폭이 60㎝를 넘으면 조립식 부엌에 규격이 맞지 않으므로 아예 시판이 불가능한 독특한 시장구조다. 이에따라 금성은 전체 부품의 70%를 현지 조달하고 현지공장이 자체설계한 4가지 유럽형 모델을 생산중이다.
○가격경쟁도 극복
올해는 6만5천대를 생산해 이내수와 EU, CIS등지에 각각 1만대씩, 중남미에 1만5천대, 중동과 북부아프리카에 1만5천대를 수출할 계획이다. 3백ℓ급 중형냉장고의 현지 시판가는 윌풀 밀레 AEG등 세계 유수회사의 제품들이 1백 수준이라면 이탈리아 국내업체인 이베르나사의 OEM을 통한 가격이 85 내외로 꽤 높은 편.
이탈리아에서 금성사의 이미지는 의외로 후한 점수를 받고있다. 밀라노의 호텔지배인 마우리치오씨는 『골드스타를 잘 알며 상당히 비싼 고급품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내 이처럼 좋은 이미지를 얻게 된 배경은 엉뚱하게도 피에트로검사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검찰의 사정활동에 힘입은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금성은 독자 브랜드의 홍보를 위해 91년말 밀라노검찰청 맞은 편인 빅토리아가의 한 빌딩에 대형 입간판을 설치했다. 그런데 검찰의 사정활동이 본격화되자 현지 TV의 카메라들은 밀라노 검찰청건물을 마구 비춰댔고 이바람에 주요 뉴스시간마다 「GOLDSTAR」전광판이 이탈리아 전역에 공짜로 방영되는 행운을 누렸다는 에피소드다.【나폴리=유석기기자】
◎금성 현지공장 GSED 어떻게 운영하나/출퇴근시간등 한국형근무규률 엄격 적용/근로자와 잦은 대화… 금연·청결도 강조
GSED는 96년 흑자전환, 98년 기업의 토착화완성을 목표로 내걸면서도 작업규율과 질서를 중시하는 한국형 근무규율을 강조한다. 유럽에 진출한 국내기업이 흔히 겪듯 이탈리아 근로자들도 인화성이 극히 강한 「신나」를 사용하는 공정에서조차 담배를 물고 일하기 일쑤였다.
또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30분전부터 작업을 내팽개치고 공장 정문앞에 줄을 선 채 기다리다 5시정각에 맞춰 문을 나서곤했다. 결근이나 조퇴는 엄연히 개인 차원의 문제로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면 그뿐이지 전체 공정의 차질은 개인이 신경쓸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금성은 독자경영 체제를 갖춘 지난해부터 캠페인을 벌여 이같은 근로규율상의 문제를 일소하려고 노력했다. 지난 5월말 이탈리아의 라이2 TV는 정규뉴스를 통해 GSED를 상세히 소개했다. 『근로자들은 연장근무때문이 아니라 직장상사들과 인사하기 위해 근무시간전에 일찍 출근한다.
공장을 청결하게 하려고 작업장내에선 담배도 안 피운다. 사장이나 간부들도 사무실에서 냉방장치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작업장소가 덥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당시 라이TV는 한국식 근로방식을 이렇게 설명하면서 『한국사람들은 직장과 가정을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산라인에서 만난 현지 근로자중 일부는 마치 한국인처럼 고개숙여 인사하며 반겨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찌는듯한 무더위속에서 청색 유니폼을 입고 땀을 흘리던 페페 프란체스코씨(30)는 『한국기업의 근로방식에 적응하기가 어렵지만 이해하려고 노력중이다』고 말했다.
현지인 경영책임자 일무미나토 본시뇨레씨는 『직장상사와의 사소한 다툼으로도 하루아침에 사표를 내는 게 이탈리아 사람의 기질』이라면서도 『적당한 목표를 제시한 뒤 근로자들의 컨센서스를 구할 경우 의외로 잘 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상룡법인장은 『해외진출기업의 빠른 토착화와 적정한 생산 효율달성이 흔히 서로 어긋나기 쉬운 목표이지만 대화와 솔선수범의 정성을 쏟으면 현지인들도 이해하고 따라와 준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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