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1987년 가을 여야합의에 따라 개정된 현행헌법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기능이다. 국가기관 및 국민의 요구에 의해 헌법에 대한 최종유권해석을 내림으로써 헌법의 파수꾼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헌재(헌법재판소)가 법에 규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정부가 연기시킨데 대한 헌법소원을 뒤늦게 각하결정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구지방자치법은 92년 6월중에 기초 및 광역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당시 정부가 대통령선거의 영향등을 이유로 유보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정부 스스로 법을 위반한 행위였다.
이에 대해 당시 야당의원들이 「공권력의 불행사로 인한 기본권침해」라며 헌법소원을 낸 것을 헌재가 무려 2년2개월간이나 미적거리다가 마지못해 결정을 내리고 그나마 위헌 여부가 아니고 각하한 것이다. 각하이유도 「이 사건 심판중 지방자치법개정과 통합선거법제정으로 선거일이 법정화되고 선거일공고제도 폐지돼 위헌을 확인해도 청구인에게 실익이 없다」고 한데는 어처구니가 없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백80일 내에 종국결정을 내리게 되어 있는 헌법재판소법(38조)을 어긴 것이고 선거유보가 명백한 헌법 및 법률위반 행위임에도 위헌대신 각하결정을 내린 것은 직무유기임이 틀림없다.
한 마디로 정치권의 눈치만 살피다가 시간이 흘러 법과 제도가 바뀌자 뒤늦게 적당한 이유와 변명으로 종결지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고도 헌재가 참다운 헌법의 파수꾼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참으로 한심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본래 헌법수호, 기본권보장, 국가권력의 람용견제를 위해 위헌심사, 탄핵심판, 권한쟁의심판등을 다루는 우리 헌재의 발자취는 기구했다. 1공 때 헌법위는 구성도 못했고 2공 때는 5·16으로 불발됐으며 3공 때는 폐지됐고 4·5공 때 다시 헌법위가 됐으나 단 한건의 위헌심사를 하지않았다가 87년 민주헌법 이후 본격가동됐던 것이다.
헌재측은 거의 1일1건꼴로 접수되는 헌법소원의 폭주로 단체장선거건등의 심리가 늦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낱 변명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가동중인, 우리와 비슷한 기능의 독일의 헌재가 연간6천∼7천건을 신청받아 국가운영 및 국민이익에 직결되는 안건의 우선 처리원칙아래 속결운영으로 신뢰를 모으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헌재가 이처럼 중요안건을 지연시킨 근본적 원인은 정치안건에 대한 알레르기증세, 그에 따른 정치권에 대한 눈치보기 때문이다. 문민시대의 헌재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당당하게 국익민리의 입장에서 유권해석을 내리면 되지 않는가.
헌재는 지난 90년 7월 국회에서 방송법등 26개법안이 날치기통과된데 대해 위헌 여부를 묻는 야당의원들의 소원을 여전히 눈치를 보며 4년 가까이 미결로 처리를 늦추고 있다. 언제까지 눈치를 보면서 늦출 것인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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