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부엔스도르프. 지난 50여년간 이곳에는 군속을 포함해 소련군 7만명이 주둔했었다. 소련 육군 가운데 최정예라고 했던 부대다. 부엔스도르프 일대는 「독일 속의 소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천여명밖에 안 남아 있다. 그나마 4년일정인 철군시한에 따라 30일까지는 모두 이곳을 떠나야 한다. 외신이 전하는 부엔스도르프 러시아군사령부는 썰렁하기 그지없다. 뜯어갈 수 있는 것은 다 뜯어가 유리창도 남은 게 없다. 낡은 자전거 바퀴며 못쓰는 가구들만 어지럽게 널려 있다. 오히려 사령부 근처의 부엔스도르프역이 매일 술렁인다. 대합실은 작별인사를 나누는 군인들로 소란스럽다. 보드카가 질펀하고 오이나 소시지로 서로 때려가며 이별을 주고 받는다.
그러나 이들의 귀향은 꿈에 그리던 가슴벅찬 귀향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물질적 풍요를 뒤로 하고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월급은 대개 5백∼7백마르크(26만∼36만원). 러시아의 5배 가량이었다. 독일이 철수하는 러시아군 주택자금으로 50억달러를 지불했지만 돌아가도 당장 살 곳이 없는 장교만 전체의 40%가 넘는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차디 찬 겨울과 대책없는 제대 뿐이다.
표트르 예레멘코씨(43)는 지난 26일 저녁 기차에 오르면서 『우리는 어려운 시절로 돌아가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간호장교인 릴리아 살라코바씨(25)는 『정말이지 떠나고 싶지 않아요. 러시아에서 이만한 생활을 누릴 수 있나요?』라고 아쉬워했다. 이들은 불안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보상하려는 듯 전자제품이나 가구등을 한짐씩 지고 기차에 오른다.
소련군은 한창 때는 동구등 외국에 70만명까지 주둔했다. 당당한 점령군이요 해방군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거의 대부분 철수했다. 부엔스도르프에서 모스크바로 떠나는 열차는 칸칸이 사람과 짐과 땀냄새로 꽉 찬다. 브레스트, 민스크, 스몰렌스크를 거쳐 32시간을 이렇게 부대끼며 가야 한다. 그러나 그리던 조국에서 기다리는 삶은 이보다 더 힘에 겨울 터이다. 구소련군 철수광경을 외신은 이렇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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