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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가정윤리/이세중칼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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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가정윤리/이세중칼럼(화요세평)

입력
1994.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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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내의 불화나 가족사이의 다툼으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가 너무 빈발하는 것같다. 인간에게 있어 공동체생활의 근본이 되며, 가장 평화로운 삶의 휴식처가 되어야 할 가정이 삭막하고 흉악한 범죄의 무대로 변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섬뜩한 소름이 끼친다. 어쩌다 부부싸움 끝에 순간적으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예는 사람에 따라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우발적 범행이므로 이를 굳이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이런 우발적 범행의 유형보다도 미리 사전에 계획되거나 의도된 가정내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는 것은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한약재상부부 피살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자식이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 잠자던 부모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게다가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부모시신에 불까지 지른 사건은 다시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희대의 패륜범죄였다. 온전한 인간의 양심과 이성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동물적 만행임에 틀림없다. 아니 이성적 판단능력이 없는 동물조차도 그와 같은 끔찍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며칠전에는 부부싸움 끝에 부인이 가출하였다는 이유로 한 돌밖에 안된 어린 아들을 창밖으로 내던져 목숨을 앗아버린 비정한 아비에 관한 보도도 있었다.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부모에게 폭행을 가한 패륜아에 관한 기사는 심심찮게 자주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연로한 부모를 모시기를 서로 미루다 형제간에 반목과 주먹다짐까지 벌어지고, 이런 광경에 충격을 받은 부모가 비관자살한 사례도 더러 있다. 또 자식들은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도 늙고 병든 부모의 부양을 귀찮게 여겨 양로원에 떠맡기는 얌체들도 있다. 부모가 물려준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혈육간에 아귀다툼을 하는 사례는 너무나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무엇이 이토록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고 사람의 마음을 황폐시켰는가. 물질만능의 그릇된 가치관과 인간의 탐욕이 어느새 「부자유친」,「장유유서」로 뒷받침된 우리의 전통적 가정윤리를 침해한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적 가정윤리는 부모의 자애와 자손의 효도, 형제의 우애를 근본으로 삼아왔다. 그 가운데서도 부모에 대한 효도는 가장 으뜸되는 행위규범으로 여겨왔다. 때문에 수백년전부터 전해오는 우리의 설화나 전설 가운데 효도를 주제로 한 내용이 가장 많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부모에 대한 효도는 우리만의 고유한 전통이 아니다. 효사상이 도덕과 윤리를 중심으로 한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약 2천5백년전 맹자에 의하여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행위규범으로 「오륜」이 제시된 것이 그 시조라고 한다. 5대 윤리를 의미하는 오륜 중에서도 부자간의 관계를 정립한 「부자유친」이 왕과 신하와의 관계를 언급한 「군신유의」보다 앞서 있는 것은 예부터 가정이 인간생활의 으뜸가는 목표임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받들어야 한다는 윤리규범은 동양사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약성서의 십계명에도 부모에 대한 효도를 행위규범으로 실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문화권인 서양에서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로 인식되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식이 부모를 잘 받들어야 한다는 규범은 인간사회에서 가장 존중되어야 할 기본윤리에 속한다.

 그런데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가족제도가 핵분열화하면서 인간은 어느새 위와 같은 윤리규범의 실천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이기심은 전통적 가족제도에 변화를 초래하더니 급기야 부모를 공경하여야 한다는 윤리의식마저 퇴색시키고 있는 것이다. 유교문화권에 속한 나라 가운데 그래도 삼강오륜을 가장 충실히 지켜 스스로 동방례의지국이라고 자랑하던 우리나라에서 앞서 언급한 반인륜적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우리의 가정윤리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은 어느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일이 아니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적 현상을 시정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무너져 가는 가정윤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이제 시급한 과제로 떠 올랐다.

 가정윤리가 확립된, 건전한 가정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공동체의식을 간직하고 질서를 존중하는 소양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가정생활에서 받는 교육이 그 성격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점을 감안하면 가정윤리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수준 높은 질서의식으로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싱가포르에서 자식의 효도를 내용으로 한 「부모부양법」을 제정하려고 심의 중에 있다는 뉴스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효도를 법으로 강제한다는 발상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수 있는 면도 없지 않으나 그 기본취지에는 퍽 공감이 간다. 가정도덕을 회복하여 가족간의 공동체의식을 높일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에 윤리감각을 고양하여 질서의식이 향상될 것을 기대한 때문이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여 세계가 직면한 20세기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방법은 이제 동양사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석학들의 외침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지금은 우리의 미풍량속인 효도사상을 되살리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아닌지.<대한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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