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21일은 소련을 붕괴시킨 8월 푸치(쿠데타)가 일어난지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쿠데타찬반세력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집회를 가졌다. 그러나 집회의 규모나 분위기는 지난날과는 달랐다. 쿠데타 지지자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이는 쿠데타에 연루돼 기소된 발렌틴 바레니코프전 소련 지상군사령관이 10여일전 군사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게 계기가 된듯하다. 바레니코프는 쿠데타주모자들에 대한 지난 2월의 의회(국가두마,러시아하원)사면령에도 불구하고 출소를 거부했다.사면령이라는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으로 정정당당히 자신의 행위를 심판받은뒤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사재판부는 바레니코프에 대한 최종판결에서 『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의 수동적 태도가 쿠데타 주모자들의 행동을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처럼 인식됐기 때문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쿠데타를 일으키게 됐다』며 그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고르바초프는 이 판결을 놓고 성명을 발표,『쿠데타 주모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은 또다시 쿠데타가 발생할 법적 원인을 제공한 셈』이라며 『러시아의 민주개혁 과정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사태가 이쯤되자 벨루이돔(당시 러시아 최고회의 건물)에서 탱크 위에 올라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쿠데타를 저지했던 옐친 대통령 등 현 러시아 정부 지도자들의 입장은 곤혹스러워졌다.쿠데타 기도가 아무런 죄가 없다면 이를 막은 세력에 죄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쿠데타를 저지한 동지였지만 지금은 정적이 된 알렉산데르 루츠코이 전부통령은 한술 더 떠 『바레니코프 장군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말해 옐친을 당혹스럽게 했다.
모스크바의 정치평론가들은 바레니코프의 무죄판결 배경을 지난해 10월 옐친의 의회 무력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유혈사태와 연관시키고 있다. 8월 쿠데타 때는 단지 3명만 사망했으나 10월 사태 때는 1백여명이 숨지는 등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다.
쿠데타가 유죄라면 10월사태 때 발포한 측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또다른 이유는 쿠데타를 저지한 후 민주주의의 도래가 장미빛 미래를 보장하는 줄 알았으나 오히려 현 상황은 쿠데타 주모자들이 지키고자 했던 소련 체제보다 더 못하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를 증명하듯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아나톨리 루키야노프 전 소련 최고회의 의장 등 쿠데타 주모자 2명이 국가두마 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쿠데타 주모자들이 유지하려던 소 연방체제 역시 현 정치권의 주된 정치적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도 이유로 들 수 있다.옐친의 정적인 루츠코이 등은 구 소련의 국경을 회복하고 위대한 러시아를 건설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옐친 진영도 구 소련 각 공화국들에 대한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강력한 러시아의 건설을 부르짖고 있다.이처럼 정치적 상황이 바뀜에 따라 쿠데타는 「없었던 일」이 된 셈이다.
옐친은 쿠데타 저지를 기념하고 당시 소련 정부 주요건물에 백청적 3색의 러시아기가 게양됐다는 점을 되새기기 위해 22일을 「국기의 날」로 공포하는 포고령을 내렸다.그럼에도 쿠데타를 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은 이미 3년전과는 많이 바뀌었다는 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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