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한민족연 내일 낙성식/한민족문화원도 곧 건립/기념공원으로 조성 계획/내년 민족시인 50주기 대대적 심포지엄 예정 윤동주(1917∼1945)의 생가가 복원됐다. 민족시인 윤동주가 태어나서 15세때까지 살았던 중국길림성 연변자치주의 용정시 지신향 명동촌에 옛 모습 그대로 시인의 생가가 다시 섰다. 81년에 헐린 지 13년만이다.
90년부터 해외한민족문화를 연구해 온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소장 이윤기·62)는 국내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북간도 항일독립운동의 요람이었던 명동촌에 생가를 복원, 오는 29일 낙성식을 갖기로 했다. 연구소는 남의 손에 넘어가 담배밭이 돼 버렸던 그 터에 1900년 건립당시대로 기와집 2채를 세웠다. 대지 3백여평에 열칸 본채와 별채, 우물까지 재현돼 윤동주의 생가는 28세의 순결한 젊음으로 일본 후쿠오카(복강)감옥에서 옥사한 시인의 어린 시절을 증언해 주게 됐다. 용정의 은진중에 진학하면서 이곳을 떠난 윤동주가 「별헤는 밤」등의 시를 통해 그리워한 북간도의 그 집이다.
명동촌은 일제시대에 윤동주의 외삼촌 규암 김약연목사(1868∼1942)가 세운 명동학교와 명동교회를 통해 수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했던 곳. 연구소측은 연변민족유적 복원의 일환으로 1억2천만원을 들여 지난 3월부터 윤동주생가와 교회 복원, 윤동주기념관 조성등을 추진한 끝에 같은 날 모두 낙성식을 갖게 됐다. 교회는 용정시정부의 종용에 따라 교회기능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여덟칸 기와집에 십자가, 강단등 내부설비를 갖췄다. 1942년 건립이후 문화혁명때 철거됐다가 90년에 다시 세워진 규암기념비의 비각도 마련됐다. 1909년에 세워진 명동교회는 정미소로 사용되다 폐가로 버려져 있었다.
은진 대성 광명등 6개교를 통합한 용정중 교정에 마련된 윤동주기념관은 없어진 학교들의 기념관이었던 대성학교 건물을 활용한 것. 시인의 사후에 나온 시집·사진과 학교생활을 담은 그림등이 전시된다. 용정시는 이들 명동촌일대 유적을 역사유물로 지정, 표지비를 세우고 기념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연구소측은 윤동주 50주기가 되는 95년, 대로변에 있는 명동소학교를 명동촌 입구의 명동학교터로 옮겨 명동촌 복원을 마무리짓고 남·북한 및 연변의 문학인들을 초청, 대대적 윤동주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또 중국조선족을 위한 족보박물관, 전통문화관과 강당 과학관등을 갖춘 한민족문화원, 청산리대첩 기념탑도 건립키로 했다.
90년 6월 설립된 해외한민족연구소는 그동안 윤동주시비건립(92년 9월·용정중), 중국조선족 대학생 체육대회(92년 5·10월), 조선족학생백일장(93년 5월), 남북한과 중국학자들이 참가한 고구려문화 국제학술대회(93년 8월)등 각종 사업을 벌여 왔다. 경북 성주태생으로 11대 의원을 지낸 이윤기소장은 『21세기를 앞두고 한반도와 연변, 연해주를 연결하는 한민족문화권 건설이 시대적 사명』이라고 명동촌복원의 의의를 설명했다.【이재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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